남북 經協 '산 넘어 산'
北 인프라 투자 '퍼주기' 우려
남북협력기금 1.6兆뿐인데… 10·4선언 經協 재추진에 수백兆 필요
유엔 對北제재 풀려도 대규모 재원 마련이 과제
증세·국채 발행 불가피… 나랏빚 급속 증가 우려
[ 임도원/서기열/성수영 기자 ]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된 남북한 경제협력을 추진하려면 최소 100조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협력이 성사되기까지는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 등 절차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이를 차치하고라도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책기관과 민간연구소 등에 따르면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10·4선언’의 재추진을 위해선 최소 100조원에서 많게는 수백조원의 재정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7일 회담에서 2007년 10·4선언을 재추진하는 경협 재개에 합의했다. 양측은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남북 고속철도 건설에만 최소 10조원 안팎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교통 등 인프라 재건에다 경제특구 개발 등에 나설 경우 10년간 최대 270조원을 투자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위원회는 2014년 북한 인프라 개발비용을 150조원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민간연구소 한 관계자는 “천문학적 자금을 마련하려면 목적세 등을 신설해 세금을 걷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제에 없던 경협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자 관련 부처들은 뒤늦게 비용 산출 작업에 나섰다.
지난 27일 열린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당초 의제에 없던 경제협력이 합의됐지만 실제 성사되려면 험로를 거쳐야 한다. 유엔 대북 제재 해제는 필수다. 양측이 우선 추진하기로 한 경의선 현대화·동해선 연결 사업도 물자 지원이 필요한 만큼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각에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역시 2007년 합의된 ‘10·4 선언’의 재추진 의지가 강한 만큼 예상외로 경협 사업이 빠르게 진척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또 다른 걸림돌은 재원이다. 막대한 남북한 경협 비용을 조달하려면 증세 외에도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가 올해 운용하고 있는 남북협력기금 규모는 1조6182억원에 불과하다. 이 중 경협을 위해 조성된 기금은 개성공단 운영대출금 및 기반조성금 312억원 등 3134억원에 그친다.
산업은행은 경협 투자를 위해 남북협력기금을 대체하는 대규모 개발기금 조성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했다. 2005년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부)가 작성한 내부보고서 ‘중장기 남북 경협을 위한 추진방안’에서는 2006~2015년 경협 비용을 60조원으로 추산하면서 재원충당 방법으로 증세 13조6640억원, 국채발행 16조4758억원을 제시했다. 결국 국민이 다 함께 떠안아야 할 몫이다.
문재인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 복지 지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미 재정부담이 커지고 있어 경협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 지출이 급증하면서 국가 부채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500조원을 돌파했다. 목적세 등을 신설해 세금을 걷거나 대규모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이 경우 국민 동의가 필요해 정부가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경협이 막대한 자금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을 경제적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있긴 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9일 발간한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진단과 과제’ 보고서에서 남북한 철도 연결 등 경협 합의와 관련해 “남북 간 물류망 연결을 통해 경제 영토가 사실상의 섬나라에서 대륙 경제국가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남북한 경제 모두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자원 개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북한에는 석회석, 마그네사이트, 철광석, 무연탄, 금 등 42개 종류의 광물이 매장돼 있으며, 잠재가치는 300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경협의 경제적 효과를 놓고 정반대의 회의론도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북한 국내총생산(GDP)은 2016년 311억달러 규모로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영업이익 수준에 불과하다”며 “경협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광물도 대부분 채산성이 낮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게 오히려 더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 경협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핵화의 불가역성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협을 앞세우는 건 전략적으로 좋지 않다”며 “한국이 경협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대북 제재의 구멍이 커지면서 북한의 협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도원/서기열/성수영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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