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평화에 대한 성급한 기대는 금물

입력 2018-04-29 18:05  

"판문점 선언문에 비핵화 세 번 언급
선언적 언명일뿐 구체성 없어

北, 평화의지 믿게 하려면
완전한 핵 폐기 진행해야
남북 경협에 대한 비판도 불식될 것"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지난 27일 남북한 정상이 판문점에서 세 번째 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자”고 밝혔다.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로 생각만 해도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단지 선언만으로 이런 시대가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면 성급하고 지나친 기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을 뒷받침할 행동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남북 화해와 공동 번영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판문점 공동선언문을 북한의 핵 개발로 사문화한 6·15선언이나 10·4선언과 비교해 보면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다만 10·4선언에서는 단 한 차례 핵 문제를 말한 데 반해 이번 선언에서는 세 차례 ‘한반도의 비핵화’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향한다는 선언적 언명에 불과할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사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표현은 아무리 좋게 봐도 문제의 실상을 호도하는 완곡 어법이다. 북한만 핵무기를 가졌다는 점에서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핵 폐기다. 북한이 과거 비핵화 약속을 파기한 적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난 4월2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 회의가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임을 선언한 사실에 비춰 비핵화 선언만으로 북한의 핵 위협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건 지나치게 순진한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북한 핵무기와 핵 시설 폐기 없이는 한반도 평화는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판문점 공동선언문으로 볼 때 정전협정체제는 조만간 평화협정체제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역사에는 평화협정만으로는 결코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수한 사례가 있다. 2차 세계대전에 앞서 로카르노조약과 뮌헨협정이 있었지만 독일의 서유럽 침공을 막지 못했다. 독소불가침조약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소련을 침공했다. 일소불가침조약이 있었지만 소련은 2차 세계대전 막판에 만주의 일본군을 공격했다.

비근하게는 파리평화협정이 월남을 월맹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북한이 설마 동족인 남한을 공격하겠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 민족주의자들이 애써 간과하고 있는 것이 북한이 남한에서만 2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6·25 남침을 감행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꾀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먼저 6·25 남침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정전협정 후 단 한 명도 돌려보내지 않은 10만 명에 달하는 전시 납북자 운명에 대해서도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6·25 남침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이 평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그나마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평화에 대한 의지를 북한이 진정성 있게 보일 때 앞으로 봇물을 이룰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비판과 저항도 불식될 것이다. 판문점 선언대로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한다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공동어로구역·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 이용 추진, 개성공업지구 건설, 문산~봉동 철도화물수송 시작,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협의, 조선협력단지 건설 등의 사업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에 평화만 정착될 수 있다면 누가 굳이 이런 경협 사업을 크게 문제 삼겠는가. 평화는 얻지 못한 채 자칫 돈만 퍼주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믿음을 주지 못하는 행동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이 6자회담에도 응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비핵화를 밝혔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북한의 평화 의지를 믿게 하려면 북한이 6·25 남침에 대한 사과부터 하고 완전한 핵 폐기를 해야 한다. 우리 정부 또한 앞으로 있을 대화와 협상 과정에서 이를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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