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개인 간 주택거래가 음성적으로 생겨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소규모 임대(월세)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거래를 주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중개인도 출현했다. 당국이 2009년 ‘살림집법’을 개정해 주택 거래, 매매, 교환을 전면 금지했지만 자생적인 시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북한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평양의 살림집(아파트) 가격은 우리 돈으로 계산해 평균 1억원, 대동강 조망 등 입지가 좋은 곳은 2억~3억원에 이른다. 펜트하우스식 대형 주택은 4억원에 육박한다. 이들 아파트의 입사증을 사고팔 때에는 북한돈이 아니라 위안화나 달러만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고질적인 주택난이 자리잡고 있다. 주택금융연구원이 발표한 ‘북한의 주택정책과 시장화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주택보급률은 60% 안팎에 불과하다. 수세식 화장실 보급률도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부모 세대와 기존 가구에 얹혀살거나 셋방을 전전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개인투자자가 당국의 승인을 얻어 토지와 건자재·인력을 동원하고 주택을 분양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까지 등장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체제로 변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 같은 부동산 시장 변화는 북한 전역의 ‘장마당 경제’와 연계돼 있다. ‘고난의 행군’ 때 100만여 명이 굶어죽는 것을 본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자력갱생의 이데올로기를 체득했다. 좌판을 펴고 식료품 등을 팔며 돈을 벌었다. 장마당은 2010년 200개에서 올해 500여 개로 늘었다. 위성지도 분석 결과 장마당 면적을 모두 합하면 약 184만㎡로 일산 신도시보다 넓다.
북한 젊은이들은 부모들을 ‘노동당 세대’, 자신들을 ‘장마당 세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정권이 시장을 이용하는 단계이지, 시장이 정권을 뒤흔들 정도까지는 가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핵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이 대화에 응한 것도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 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5000달러 수준이 되면 사회주의·독재 정권이 흔들린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의 1인당 GDP는 고작 1000달러 선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주(住)뿐만 아니라 의(衣)·식(食) 분야도 다르지 않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