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신진 디자이너들의 하소연

입력 2018-04-3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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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혜 베를린/생활경제부 기자 spop@hankyung.com


[ 민지혜 기자 ] “팔아주겠다는데 옷을 안 보낼 이유가 있나요. 다 그럴 만하니까 그런 거죠.”

지난 26~30일 독일 베를린의 편집숍 ‘안드레아 무르크디스’에서 열린 한국 디자이너 10명의 해외 진출 지원 프로그램 행사(텐소울·10Soul)에서 만난 한 디자이너의 얘기다. 그는 “베를린 3대 편집숍에 내 옷이 입점해 기쁘다”면서도 “정부 지원이 좀 더 세밀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백화점, 편집숍 등 해외 유통업체들은 신규 브랜드를 처음 판매할 땐 신제품 화보를 보고 한 디자이너당 여러 종류의 옷200~300벌을 달라고 요청하는 게 보통이다. 현지 시장을 잘 아는 유통업체가 팔릴 만한 옷을 고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번 베를린 행사엔 10명이 모두 250여 벌밖에 보내지 못했다.

사정은 이렇다. 현지 판매가 결정된 건 2~3개월 전인데 올해 봄·여름 신제품은 이미 6개월 전 한꺼번에 생산했다. 그동안 다 팔린 인기 상품은 더 제작할 수 없었다. 소량만 만들어줄 공장도 없거니와 그 생산비 부담을 떠안고 가격을 올리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마저도 안 팔릴 경우 재고 부담을 디자이너가 안아야 한다는 데 있다. 유통업체가 제품을 다 구입하는 게 아니라 일단 판매한 뒤 안 팔리면 돌려보내는 ‘위탁 판매’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베를린에 처음 진출한 또 다른 디자이너는 “가격을 더 비싸게 매기면 판매가 안 될 텐데 어떻게 몇십 장만 따로 생산할 수 있겠느냐”며 “물론 이걸 구입해 주면 부담을 안고서라도 만들겠지만 옷이 돌아오면 시즌이 지난 재고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고 읍소했다.

정부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K패션을 육성하고 있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 서울디자인재단 등 K패션 지원 사업은 주로 해외 유통업체 입점 비용, 디자이너의 항공권 등을 보조해 주는 방식에 그치고 있다. 유통업체들이 요구하는 ‘인기 상품 다품종 소량 생산’에 드는 비용은 디자이너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K패션을 이끌어갈 신진 디자이너를 제대로 돕고 싶다면 “더 예쁜 옷도 많았는데 가져올 수 없어 아쉽다”는 디자이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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