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진료 부추기는 왜곡된 '건보 수가' 손본다

입력 2018-05-02 18:59   수정 2018-05-03 05:22

병원들, 수술비 턱없이 낮아 치료재료·입원비 등으로 편법 수익 보전

복지부 '적정 수가' 보상 추진
"의사 6명 매달려 7시간 이상
수술하는데 163만원 받아"

진료비 보장률 63% 그쳐
OECD 평균에도 못미쳐

정부, 건보 혜택 대폭 확대
2022년까지 30조6000억 투입



[ 이지현 기자 ] 방광암 환자는 방광을 떼고 골반에 있는 임파샘을 모두 제거한 뒤 소장을 잘라 공처럼 이어붙여 방광 기능을 하도록 바꾸는 수술을 받는다. 집도의와 수술을 돕는 어시스트 전문의, 마취과 의사 등 여섯 명이 매달려 짧게는 7시간, 길게는 11시간 동안 해야 하는 대수술이다. 이 수술에 정해진 건강보험 수가는 163만1430원이다. 동네 성형외과에서 의사 혼자 30분 남짓이면 끝내는 쌍꺼풀 수술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술 시간이 긴 데다 투입되는 의료진이 많고 어려운 수술의 수가가 턱없이 낮다 보니 의료계에는 수익 보전을 위한 편법이 활개를 친다. 수술 전 여러 검사를 받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1·2인실 입원료도 주된 수익원이다.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치료 재료 비용을 올려 받기도 한다. 수술용 실, 붕대 등의 비용에 수술비를 일부 전가하는 방식이다. 왜곡된 수가 구조가 낳은 기현상이다.

정부가 이 같은 수가제도 개선에 나선다. 의학적 비급여를 급여로 바꾸는 ‘문재인 케어’ 정책을 추진하면서 수술, 처치 등의 낮은 수가를 높일 계획이다. 의료계는 정부가 수가를 제대로 높이지 않을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복지부 “수가 정상화 나선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말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의사, 간호사 등이 많이 투입되는 분야의 수가를 높이는 적정 수가 보상 추진계획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케어 정책이 성공하려면 왜곡된 수가를 바로잡는 게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진료 항목은 가격과 횟수가 정해진 급여 항목, 의료기관에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비급여 항목으로 나뉜다. 급여 항목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환자 부담이 적다. 반면 비급여는 모두 환자가 내야 한다. 복지부는 매년 5000억원 정도를 투입해 환자가 받는 건강보험 혜택을 늘려왔다. 그러나 국내 건강보험 보장률은 6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보다 낮다. 국내 환자는 전체 진료비 1000원 중 626원의 혜택만 보고 있다는 의미다. 비급여 진료비가 계속 늘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5조7000억원 규모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2년까지 30조6000억원 정도를 투입한다. 올해에는 상복부 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급여 항목으로 바꾼다.

◆“재정계획 불충분” 지적도

문제는 재정이다. 의료계는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2~3배 정도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급여가 급여로 바뀌면 사용량, 가격이 정해진다. 의료기관 자율성은 줄어든다. 낮은 수술 수가는 그대로 두고 치료 재료비, 입원비, 검사 횟수만 제한하면 수익을 보전할 창구마저 막혀버린다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보험 항목을 늘려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속 가능한 재정대책이 없다”며 “치료 횟수와 치료 선택권 제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사들은 오는 20일 문재인 케어 반대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복지부는 2000여 개 비급여 치료 재료를 급여로 바꾸면서 수술 수가도 함께 올릴 계획이다. 과도한 급여 항목 통제도 줄이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새롭게 건강보험 항목에 포함되는 예비급여는 진료비를 삭감하지 않고 의료기관의 치료 자율성을 보장할 것”이라며 “의료인의 자율성을 높이고 가입자 보장성은 확대하는 방향으로 건강보험 심사체계를 바꾸겠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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