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억원 들여 5년간 복원 공사
야생서 사라진 남아프리카 소철
국제 보호종 돔베야 모리티아나
희귀 온대식물 연구소로도 명성
[ 박근태 기자 ]
영국 런던 큐가든 왕립식물원의 상징인 ‘템퍼러트 하우스(온대식물 온실)’가 5년간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5일(현지시간) 다시 문을 열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양식으로 지은 이 온실은 세계 곳곳의 온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흰색 철골구조와 수많은 유리창으로 상징되는 온실은 건축가 데시머스 버튼이 설계해 1863년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는 영국 정부가 보호하는 1등급 보호 건물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150년이 흘러 지붕이 새고 철골이 부식되면서 온실 곳곳에 문제가 발생했다. 2013년 시작된 큐가든 프로젝트는 가장 복잡한 온실 복원사업으로 불릴 정도로 대공사였다. 온실 소속 원예사와 공사 작업자들은 온실이 문을 연 이후 처음으로 건물의 페인트를 모두 벗겨냈다. 건물을 다시 칠하는 데 사용한 페인트만 축구장 네 곳을 칠하는데 필요한 양인 5280L에 이른다. 온실의 대표적 상징인 1만5000장에 달하는 유리창도 교체했다. 작업자들이 설치한 작업대 길이가 180㎞에 이른다. 공사비는 4100만파운드(약 600억원)가 들어갔다. 새로 단장한 온실은 예전보다 빛이 더 많이 든다. 식물원 측은 지붕에 닿았던 높은 나뭇가지를 치고 짧은 나무들을 옮겨 심었다.
과학자들은 큐가든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 연구소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템퍼러트 하우스 역시 단순한 온실이 아니다. 실제 이 온실에는 세계 곳곳의 온대지역에서 가져온 1만 종 이상의 식물이 살고 있다. 거의 모든 골디록스 영역(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곳)에서 가져다 심은 식물이다.
이 온실은 단순히 식물을 보호하고 키우는 공간이 아니라 지진과 산불 같은 자연재해로 사라지는 식물을 지켜낼 보루 역할도 하고 있다. 일부 멸종위기 희귀 식물에는 최후 피난처인 셈이다. 1500종에 이르는 온대지역 식물 중 남아프리카 소철은 큐가든과 일부 개인 소장가가 소유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야생에서 사라졌다. 공룡시대부터 있었던 이 나무는 19세기 중반 이곳으로 들어온 뒤 지금은 수나무만 남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식물’이라고도 불린다. 씨앗이 열릴 암나무가 필요한 상황이다. 스콧 테일러 큐가든 수석원예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도 식물 사냥꾼이 이 나무의 대를 이을 암나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돔베야 모리티아나라는 풀도 이 식물원의 보물로 통한다. 당초 이 식물은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도양 모리셔스섬의 고원지대에서 발견된 뒤 이곳으로 옮겨져 지금은 성공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온실에서 자라는 일부 식물은 국제적인 보호종으로 지정됐다. 이 중 일부를 다시 야생에 심는 방안이 국제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다. 항암제 성분인 택솔이 들어 있는 ‘동히말라야주목’이 그중 하나다.
온실은 오랫동안 시민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안락한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자연주의자이자 방송인인 데이비드 애튼버러는 “열대의 향기에 끌려 이곳에서 주말에 머물고 심호흡하지 않았다면 사무실에서 일만 하며 매우 우울했을 것”이라며 “새롭게 단장한 온대식물 온실은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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