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도덕법칙을 '정언명령'이라고 불렀죠
우리는 거짓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거짓말이 왜 나쁜지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알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왜 인간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런데 칸트에 의하면 의외로 그 대답이 간단하다. 한마디로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칸트의 ‘의무론’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탐구다. 그렇다면 칸트는 어떻게 해서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곧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보았을까?
인간답게 사는 도덕
칸트가 보기에 인간이 인간다운 존재가 되는 것은 자신 안의 자연적 경향성을 극복하고 도덕법칙에 따르는 데 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적 존재로서 생물적 본능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을 타고난 존재로서 자연적 존재인 동물과 구별된다. 인간은 이성으로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의식적으로 그와 같은 행위를 자제할 수 있다. 즉, 인간만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 자유 의지는 도덕 성립의 전제가 된다. 이렇게 보면 도덕적 행동이란 자신 안에 있는 이성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인간을 자율적 존재라고 보았다. 여기서 자율이란 자신의 욕구나 타인의 명령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객관적인 도덕법칙을 세워 이에 따르는 것이다. 이 점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다움의 핵심인 것이다.
옳은 것을 하려는 선의지
“내가 그것들을 더욱 자주,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항상 새롭고 더욱 높아지는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에 있는 도덕법칙이다.”《실천이성비판》
칸트는 밤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별들이 질서 정연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자연의 법칙, 즉 인과법칙이 있듯이 인간의 마음 속에는 자유의 법칙, 즉 도덕법칙이 있다고 보았다. 칸트는 도덕법칙을 찾기 위해 먼저 ‘최고의 선’이 무엇인지 밝히려 한다. 칸트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선의지밖에 없다고 말한다. “선의지는 그것이 수행한 행위나 결과, 어떤 목적의 달성을 위한 경향성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선에 대한 의욕 때문에 선한 것이다.”《윤리형이상학 기초》
선의지는 결과나 경향성 때문이 아니라 동기나 의도 때문에 선하다. 말하자면 선의지란 옳은 행위를 오로지 그것이 옳다는 이유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이고 이를 따르려는 의지다.
예를 들어 한 장면을 그려보자. 한 고등학생이 사람들이 붐비는 시내버스에 앉아 있다. 그런데 그의 앞에 한 할머니가 다가왔고, 그는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일반적으로 이 학생의 행위는 노인을 공경한 착한 행동으로 칭찬받을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은 단순히 착하다는 것과 다르다. 만약 학생이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 생각하며 자리를 양보했다면 그 행동은 도덕적으로 옳다. 그런데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리를 양보했거나 그냥 앉아 있으려니까 마음이 불편해 그렇게 행동했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정언명령 따라 행동하라
왜 그럴까? 칸트가 보기에 목적을 위해 수단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은 것이고, 전제조건 없이 의무 그 자체를 위해 행위하는 것이 도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행위는 말하자면 도덕적 의무감이 자연적 경향성과의 갈등을 이겨내서 그로부터 행해진 행위인 것이다. 이 점에서 칸트의 도덕이론은 의무론이라고 한다. 이는 행위가 가져올 결과에 따라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는 결과론과 대비된다.
칸트에게 있어 도덕법칙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 칸트는 이를 전문 용어로 정언명령이라 하여 조건이 붙은 명령인 가언명령과 대비시켰다. 칸트는 도덕법칙으로서 정언명령을 이렇게 말한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칸트에 따르면 이 정언명령은 우리 자신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임을 확인하기 위해 지켜야 할 조건인 것이다. 이제 우리가 왜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이유가 분명해졌다.
◆기억해주세요
만약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는 칸트의 정언명령, 즉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해도 좋은지를 묻는 조건에 어긋난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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