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 이종윤 명예교수
제조업의 침체에 이어 그나마 한국경제를 뒷받침해 주던 수출마저 증가 흐름을 멈추고 하락 경향으로 명확히 돌아서고 있다.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와중에 한국의 대외 수출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요한다.
줄곧 증가 경향을 보이던 수출이 왜 하락세로 전환되고 있는가? 무엇보다 한국경제가 인건비의 상승이 생산성의 상승을 상회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이미 자동차, 조선 등 조립 부문에서는 강성 노조로 인해 생산성 대비 임금수준과 절대 임금 수준 모두 한국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중국은 물론이요 선진국인 미국, 독일, 일본 등에 비해서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이들 산업에서 이렇게 높은 임금수준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까지 자동차나 조선 수출이 증가되어 왔을까? 그것은 이들 제품생산에 투입되는 2차, 3차 하청업체들의 부품단가를 후려쳐서 채산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신정부 출현 이후 추진된 최저임금 대폭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큰 폭의 근로시간 단축 조치로 인해 부품생산업체 종업원 임금이 생산성 이상으로 급등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한국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급락하여 이들 부분의 수출 증가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중요한 점은, 신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기업집단 내 기업들 간 상호출자를 철저히 배제시키고 소액주주 우대정책을 추구함에 따라 개별 기업들의 경영구조가 극히 취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최고경영층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세우기보다는 엘리엇의 공격에 대한 방어에 급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 트럼프정권의 출범 이후 세계경제에 보호주의가 범람하여 종래의 한국 수출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도 한국 수출을 둔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수출의 침체현상을 이렇게 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침체는 일시적 경기 순환적인 현상이 아니므로 원인별 적합한 대응책이 요망된다.
그 대응책으로서, 먼저 임금상승에 상응한 생산성 향상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신정부는 복지증대에 역점을 두고 있다. 물론 빈부격차가 심각한 한국경제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복지 증대는 필요하다. 다만 그 지출방식을 생산성 증대와 철저히 연동시킴으로써 대대적인 생산성 향상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최근 남북 간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는데, 경제협력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수출 경쟁력 강화를 통한 수출 증대가 절실하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인건비 이상의 생산성 증가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생산성 향상 운동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활동의 일환으로서 모기업과 무수한 하청업체들 간 협력체제를 강화하여 일본 기업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기업의 높은 기술력과 경영능력을 하청기업들에 전파시키면, 하청업체들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간 한국경제는 급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수 기업들에 기술과 경영 자원을 집중시키는 방법을 택해왔다. 그러므로 기업지배 구조를 개선시킨다는 이유로 이들 대표적 기업집단들을 약화시키면 그 만큼 한국경제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사태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비리는 철저히 제거해야 하나 한국기업의 경영구조를 약화시켜 엘리엇 같은 투기자본에 휘둘리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선진국과 같이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기업이 안정적인 경영구조 기반 위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환율 안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환율 안정을 위한 직접 개입은 인정되지 않고 있으므로, 금융정책이나 외화의 수요·공급과정에서의 적절한 대책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달러대비 원화가치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보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이나 때때로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중국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동남아나 인도 등 한국경제와 보완성이 높은 경제권과의 긴밀성을 일층 강화하는 제반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 방법으로, 이들 국가들과 협력하여 IT, SOC, 금융 등 한국과의 교역 확대·강화로 연결되는 제반 인프라를 충실화해야 한다. 그러면 이들 국가들과의 경제 보완성이 크게 높아지고, 그만큼 미국과 중국 경제에의 의존성을 낮출 수 있어 통상환경의 안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부존 조건의 특수성으로 인해 국제 분업구조에 편입되어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한국경제로서는 튼튼한 국제경쟁력이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대응책 수립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종윤 한국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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