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전산화 같은 지원기능에 머문 韓 IT
이젠 판을 바꿀 혁신적 기술을 추구해야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해외에 나가 보면 가끔 랜선으로 연결된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리다든지, 와이파이 요금을 따로 받는다든지 하는 낙후된 인터넷 환경에 놓이게 돼 한국의 앞선 정보기술(IT) 환경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한국만큼 인터넷 환경이 좋은 나라도 흔하지 않다. 한국에선 정부의 여러 공공서비스와 은행의 여러 업무가 인터넷상에서 잘 제공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유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미래의 여러 산업의 변화는 그 핵심이 IT기 때문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우리 산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필자는 우리가 자랑하는 IT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IT가 전혀 다른 기술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정부는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초고속통신망으로 대변되는 유무선 통신망을 전국에 보급했다. 이를 기반으로 전자정부 서비스라든지, 은행의 업무 전산화 등 다양한 산업 부문에서 IT를 접목해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사업을 많이 추진했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거뒀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웬만한 대기업이나 은행들은 각기 IT 자회사를 세웠고 이들 IT 자회사는 모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덕에 덩치를 불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IT 강국의 모습을 갖추기에는 충분한 산업 규모가 형성됐으며 수많은 IT사업이 진행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회사 형태의 IT 기업들은 한계가 있었다. 매출 또는 고용 등 외형적으로는 매우 크고 훌륭하게 성장했지만 모기업의 업무를 전산화하는 지원적 IT에 머물렀기 때문에 혁신적인 IT를 개발해 새로이 시장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에는 큰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우리의 IT는 단순 전산화 업무와 같은 지원적 IT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로 인해 우리의 IT산업은 시간당 공수(工數·man hour)로 그 가격이 책정되는 단순 노동시장과 비슷한 하청과 재하청의 레드오션 산업으로 전락해버렸다.
모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주 업무인 IT 자회사로선 모기업 비즈니스의 근본을 바꿀 수도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이나 블록체인 기술 등과 같은 혁신적 IT 개발은 주 관심사가 아닐뿐더러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것도 이들의 본업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원적 IT에 안주하는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IT 기업들은 다양한 혁신적 기술 개발에 주력해왔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세계를 무대로 그 잠재력을 현실화해나가고 있다. 우리 IT 기업들이 도리어 이들의 기술을 도입하고 이들의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된 이유다.
최근 세계 산업계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전환)이라는 구호 아래 업종에 관계없이 거의 모두 혁신적 IT 기반의 디지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피터 웨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지 디지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이익률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평균 30%나 높게 나온다”고 한 것처럼 혁신적 IT에 기반한 기업 경쟁력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 기업이나 은행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IT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기존의 지원적 IT에 머물기보다 모기업의 비즈니스 본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적 기술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체계를 서둘러 갖춰야 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얼마 전 독일을 방문했을 때 자동차기업 폭스바겐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소속된 부서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본부였다. 이제는 자동차의 경쟁력이 혁신적 IT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자동차의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화를 진행시키며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들 관계자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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