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안경 쓴 여성 앵커

입력 2018-05-10 17:33   수정 2018-05-1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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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순 <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sslim@hwawoo.com >


최근 국내 한 주요 방송사에서 여성 앵커가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한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됐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여성 앵커는 우리 사회에 굳어져 있는 ‘여성은 예뻐 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반대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여성에 대한 이런 성적 고정관념은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성장을 가장 큰 가치로 여겨온 산업사회를 겪어 오며 여성의 역할이 약화되고 그에 따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구성원 지위에서 이탈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미국 CNN의 경우 여성 앵커들이 젊고 예쁜 여성들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외모보다는 해당 분야 경험과 전문성이 보다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미국은 시각매체의 발달과 상업주의 범람 속에서도 앵커를 비롯한 대부분 직종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평가기준이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헬레나 노르베리가 쓴 《오래된 미래》는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 마을이 서구자본 유입으로 개발되면서 자족적 공동체 사회가 자본주의적 산업사회로 변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책은 산업화 현상 중 하나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고 여성들이 주로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외모에 몹시 신경 쓰는 세대로 교체되는 점을 기술한다. 전통적인 공동체 사회에서 라다크 여성들은 존중받는 가족 구성원의 일원이었고, 배우자 선택 등에서 여성의 외모를 특별히 중시하지 않았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는 라다크 속담은 사람의 내적 품성을 중시하는 라다크의 전통적 가치 기준을 잘 표현한다. 라다크의 예는 사회 변화가 여성의 역할과 평가기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우리 사회도 전통적인 농업 공동체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이제 고도의 정보사회로 발전하고 있고, 그에 맞춰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도 바뀌고 있다. 바야흐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능력에 의해 평가받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본격적으로 산업화되기 이전에 전통적인 유교사상 등의 영향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 하지만 결혼한 여성이 모든 가사를 처리하고 농사도 돌보는 등 가정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엄연히 외모보다는 솜씨나 마음씨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조가 존재했다. 여성의 역할과 가치평가에 대한 새로운 변화는 어쩌면 외모보다는 능력과 품성을 더 중시하던 우리의 소중한 옛 가치기준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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