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진 기자 ] 10일 오전 2시30분(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40여 개국에서 모여든 300여 명 기자의 눈을 통해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한국계 미국인 3명과 이들을 자랑스럽게 맞이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여과 없이 전달됐다.
툭하면 ‘네버(never) 트럼프’를 외치던 언론들도 이날만큼은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환영 행사장에서 만난 CNN의 제프리 지닐리 백악관 출입기자는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봐야겠지만 미국인들을 무사히 데려온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트럼프 행정부지만 인권과 자국민 보호에서는 외국 기자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집요한 모습을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집권하자마자 미군 유해발굴 사업을 거론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했다. 6·25전쟁 당시 사망한 미군은 약 3만6000명인데 7800여 구의 시신이 아직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챙긴 것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북한 도발이 줄고 대화 무드가 형성되자 이번엔 억류 미국인 송환 문제를 꺼냈다. 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이 문제를 제시했고 4개월여의 물밑 협상 끝에 송환을 성사시켰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평양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엄청나게 흥분된다”고 말했다. 조지 패튼 장군의 용맹과 올리버 홈스 연방 대법관의 냉철함을 가졌다고 칭찬받는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납북 일본인 송환 문제를 북·미 정상회담 의제로 올려 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해 확답을 받은 뒤 귀국했다.
조용한 것은 한국뿐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내걸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을 주도하고 있지만 인권과 억류자 문제에는 입을 닫고 있다.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은 6명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부분 북한과 중국 접경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다 북에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3명은 북한 형법의 국가전복 음모죄, 간첩죄 등이 적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0일 ‘한국인 억류자 문제에 진척이 없나’라는 물음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인 3명이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일성으로 “우리를 집에 데려다준 미국 정부와 트럼프 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는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약 그들이 한국인이었다면 집에 돌아올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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