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어느덧 가입자가 2200만 명에 육박하는 ‘공룡 기관’이 됐다. 이사회는 이 조직의 예산·결산을 비롯해 사업운영계획과 기본방침 수립, 정관 변경 등 주요 사안을 다룬다. 자산 운용을 총괄하는 기금운용본부장을 뽑는 과정에도 당연직 추천위원으로 들어가는 등 국민연금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두루 관여한다. 국민연금법에 ‘사용자 대표, 근로자 대표, 지역가입자 대표 각 1인과 고위 공무원 1인이 이사에 포함되어야 한다’(30조)고 명시된 것도 그래서다.
그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사용자 측 대표로 들어갔는데, ‘전경련 자리’가 이번에 중소기업중앙회 전무로 바뀐 것이다. 중소기업계 이사의 향후 활동은 지켜봐야겠지만, 중기중앙회의 현직 간부라는 점에서 대기업 입장이 반영되기가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경총도 소·중·대기업을 모두 회원사로 두고 있어 대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자산 600조원을 쌓아오기까지 대기업의 기여가 컸다. 근로자와 고용주가 절반씩 부담하는 체제가 계속되는 한 대기업 역할은 별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기업 쪽 의견통로를 막아버렸다면 단순히 ‘전경련 패싱’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안 그래도 경총 중기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의 상근부회장들을 공무원 출신이 장악해 “재계 의사는 제대로 반영되겠나” 하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의결권 행사를 비롯해 국민연금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인적 구성 등 거버넌스에 대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나오면 의미가 없는 장담이다. 기금 운용에서의 전문성 책임성 강화 같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최근 논란이 된 스튜어드십 코드나 민간위원들에게 의결권 행사 맡기기 같은 사안도 시행에 앞서 더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필요가 있다. 국정 곳곳에서 나타나는 ‘대기업 배제’의 후유증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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