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 루 前 美재무-유일호 前 부총리 대담
"위기때 믿을 건 재정"
트럼프, 확장적 재정정책… 결국 인플레 자극할 것
관세 폭탄 등 보호무역은 수입물가만 끌어올릴 뿐
北, 약속 지키는지 봐야… 신뢰뿐인 합의 의미 없어
[ 김일규/이지훈 기자 ]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서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제이컵 루 전 미 재무장관이 세계 경기 침체 가능성을 경고했다.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2018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다.
루 전 장관은 기조연설과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대담에서 “경기 주기에서 다운사이클이 최대한 천천히 오길 희망하지만 분명히 온다”며 “경제가 좋을 때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곳간을 미리 채워 위기 때 제대로 써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오히려 포퓰리즘 정책으로 재정적자를 늘리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루 전 장관의 지적은 한국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우리 정부도 각종 복지정책으로 재정적자를 늘리고 있다”며 “한국이 건전한 재정으로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미국 재정적자, 인플레이션 자극
루 전 장관은 빌 클린턴 행정부에 이어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지내며 정부 살림살이를 챙겼다. 클린턴 행정부에선 3년 연속 재정흑자를 내기도 했다. 건전한 재정이 위기 때 큰 힘이 된다는 게 루 전 장관의 지론이다. 호황기에 금고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루 전 장관은 그러나 미국이 높은 고용률을 달성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기간에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대대적인 재정 투입 ‘실험’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포퓰리즘이 강하다”며 “앞으로 10년간 미국 정부 부채가 1조5000억달러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단기 성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약효는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는 게 루 전 장관의 예측이다. 그는 “물가 상승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고, 이는 정부의 국채 조달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정부 재정을 더 압박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무역 갈등, 세계 경제에 위협
루 전 장관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도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최근 중국을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라며 “중국의 한 회사가 미국 보잉사 비행기 20대 주문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미·중 무역 갈등이 미국 경제에도 얼마나 악영향이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미국이 보호무역 수단으로 쓰고 있는 ‘관세 폭탄’은 자국 내 수입 물가만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역시 인플레이션을 촉발해 미국 기준금리 인상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신흥국 금융시장에서 자금 유출이 늘고 미국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루 전 장관은 진단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무역적자와 관련해 다른 나라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려선 안된다”며 “보호무역과 재정적자 확대 정책이 거시경제의 틀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적절하게 끝나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중국 역시 불공정한 정부 보조금을 없애고,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등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비핵화 어길 땐 대북 제재 복원
루 전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어길 경우 곧바로 제재 조치를 복원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 제재 조치를 이끈 인물이다.
루 전 장관은 “남북한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성과를 내길 희망한다”며 “이는 한반도 안전과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1994년 클린턴 행정부 때 핵 동결을 조건으로 대가를 받은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일을 언급하며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합의에는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다시 제재하는 장치를 포함해야 한다는 게 루 전 장관의 조언이다. 그는 “북한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합의는 의미 없다”며 “약속을 지키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이지훈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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