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5일 풍계리 갱도 폭파
北 "관측설비·연구소 철거하고 핵실험장 주변 완전히 폐쇄"
전형적 생색내기 평가도
"2008년 냉각탑 폭파때처럼 언론만 불러 볼거리 제공"
북미회담·대북제재 완화前 검증절차 돌입 부담 느꼈을 수도
[ 정인설/조미현 기자 ]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겠다고 한 것은 향후 비핵화 행보를 철저히 ‘워싱턴 시계’에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사회에 풍계리 갱도를 폭파하는 장면을 공개해 다음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협상력을 키우려는 의도도 있다.
당초 약속과 달리 핵실험장 폐쇄 때 전문가들을 초청하지 않아 반쪽짜리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비판에도 북한은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대로 미국 정치 일정에 맞춰 비핵화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잠정 폐기냐 완전 폐쇄냐
북한 외무성은 지난 11일 “북부(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동시에 경비 인원들과 연구사들을 철수시키며 핵실험장 주변을 완전폐쇄하게 된다”고 밝혔다. 핵실험장을 없애는 조치에 대해 ‘폐기’와 ‘폐쇄’를 모두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비핵화 조치는 ‘유예-폐쇄·봉인-불능화-폐기’로 나눈다. 폐쇄는 잠정적인 조치이며, 폐기는 완전한 비핵화 단계일 때 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폐기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개발해 놓은 ‘현재 핵’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하고 ‘미래 핵’을 포기한 것을 높이 평가해서다.
청와대는 13일 핵실험장 폐쇄를 평가절하하는 것에 대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풍계리는 사실상 북한에서 핵실험이 가능한 유일한 장소”라며 “최소한 앞으로 핵 개발을 안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공식 논평을 통해선 “남북한 정상회담 때 한 약속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며 “풍계리 갱도를 폭파하는 다이너마이트 소리가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한 여정의 첫 축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12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감사하다”고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백악관 “전문가 사찰 빠져”
북한은 이번에 전문가 초청 문제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앞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북부 핵실험장 폐쇄를 5월 중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북으로 초청하겠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핵실험장 폐쇄현장에 유엔이 함께해 폐기를 확인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미국 백악관도 전문가들의 사찰과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관계자는 “국제전문가들에 의해 사찰 및 충분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는 폐쇄는 북한의 비핵화에서 핵심 조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추가적인 세부사항에 대해 더 알기를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핵실험장 폐쇄가 전형적인 생색내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례를 보더라도 6회 핵실험을 했으면 더 이상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며 “핵실험장 폐쇄는 2008년 영변 냉각탑을 폭파할 때처럼 일반 국민이 보기에 굉장한 볼거리가 되기 때문에 언론만 부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전문가 집단을 초대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핵실험 정보가 유출될 것을 우려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북한이 전문가들에게 풍계리 핵실험장을 공개하면 과거 6차례 핵실험한 정보를 노출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제재가 풀리기 전에 그런 검증 절차를 하는 것에 북한이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가까운 시일 내 투명하게 공개할 절차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인설/조미현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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