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경제 타고 私금융 급성장
일부 당간부·화교·외국 파견 노동자…
식량배급 무너진 틈타 농작물 입도선매
공산품 중간 유통마진 챙겨 자금 축적
사실상 모든 금융회사 업무
대형 돈주, 무역·건설까지 사업영역 확대
전국 네트워크 형성해 휴대폰 송금도
돈주가 찾는 호화음식점·승마장 등장
[ 김순신 기자 ]
2017년 4월13일 북한 평양엔 파란 눈의 외신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여명거리 준공식’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의 경제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북한은 여의도 면적(2.9㎢)의 3분의 1 수준인 여명거리(0.89㎢)에 모두 50여 채의 건물을 세웠다. 7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포함해 신축 아파트 44개 동과 학교 6개, 유치원 3개 등이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 사실상 마비
국제 사회는 여명거리 준공에서 두 가지 때문에 놀랐다. 하나는 착공 1년 만에 공사를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물론 반신반의하고 있으며 부실공사를 우려하는 눈길도 있다. 다음으론 무슨 돈으로 이 공사를 벌였느냐는 점이다. 중국 등과의 제한된 거래를 통해 유입된 자금과 함께 북한 내부에서 공급된 돈이 있어 이 같은 공사가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금융에선 제도권 금융회사들을 찾기 힘들다. 그 자리를 사금융업자인 ‘돈주(主)’들이 차지하고 있다. 돈주란 미화 5만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북한 상위 2%(50만여 명)로 추정되는 신흥 부호층을 뜻한다. 북한 무역성 출신 탈북인사는 “여명거리 전체 건설자금 가운데 80%는 돈주들이 투자한 것”이라며 “북한에서 사금융은 공식적으론 불법이지만 신용대출부터 운수업, 무역업, 건설업까지 돈주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평해튼(평양+맨해튼)’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주의 대업이 지극히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세워진 셈이다.
북한에서 돈주들은 배급제가 무너진 1994년부터 본격 성장했다. 특히 ‘고난의 행군’으로 100만 명이 넘는 아사자가 생겨난 1990년대 중반부터는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형성됐다. ‘장마당 경제’라고 일컬어지는 북한식 자본주의의 탄생은 거대한 불법 사금융을 낳았다.
장마당은 돈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자산이 있던 화교, 재일동포, 탈북자 가족, 무역일꾼 등은 기회를 잡았다. 돈주는 식량 공급과 공산품 유통 등을 통해 돈을 모은 뒤 사금융으로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또 다른 탈북인사는 “1990년대 후반 소형 돈주들은 월 20%에 달하는 고리대를 굴리며 부를 축적했다”며 “2003년 들어 장마당을 일부 허용한 7·1조치 등에 힘입어 대형 돈주들은 일부 당 간부와 결탁해 운수업, 무역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고 전했다.
평양 여명거리 아파트 한 채 2억원
북한 정부가 커지는 사금융 시장을 손놓고 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2006년 상업은행법을 제정해 개인을 상대로 여·수신 업무를 하는 상업은행을 설립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졌다. 2009년엔 화폐개혁을 통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북한 정부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상업은행법이 제정된 지 12년이 흘렀지만 상업은행 설립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화폐개혁은 구권 화폐를 신권 화폐로 바꿔주는 양을 제한해 화폐 신뢰도 저하라는 결과를 낳았다.
자산가 계층이 생기면서 북한 사회도 변화했다. 평양에는 돈주들이 찾는 호화 음식점과 승마장 등이 속속 들어섰다. 돈주들은 2010년대 들어 대규모 부동산개발로 눈을 돌렸다. 화폐개혁이 실패하자 자연스레 안전자산인 달러와 위안화, 실물자산으로 돈이 몰렸다.
정은이 경상대 사회교육학과 교수는 “평양에서 대동강 조망 등 입지가 좋은 곳의 아파트 가격은 20만~30만달러에 달한다”며 “돈주들이 당국의 승인을 얻어 토지와 건자재·인력을 동원해 주택을 분양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국 단위 네트워크를 갖춘 돈주들이 나타나면서 휴대폰을 활용한 송금 업무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영희 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은 “돈주로 대표되는 사금융은 북한에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이 퍼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