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北核 테네시로 가져오겠다"지만… 北이 숨기면 완전 검증 불가능

입력 2018-05-14 17:55   수정 2018-05-15 06:35

윤곽 드러난 '비핵화 게임'

볼턴, 가이드라인 제시
"우라늄 농축 능력 제거하고
중·단거리 탄도미사일도 폐기"

北, 운신의 폭 넓은 편
한·미, 핵탄두 20~40기 추정할 뿐
핵 정보 정확한 파악은 못해
전문가 "北, 핵무기 숨길 곳 많아"



[ 워싱턴=박수진/도쿄=김동욱/정인설 기자 ]
미국과 북한이 다음달 12일 열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고받을 카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국은 핵무기와 함께 미사일 프로그램과 대량살상무기(WMD)까지 모두 폐기하면 체제 보장과 경제제재 해제, 민간투자 허용을 통째로 제공하는 ‘3+3 카드’를 내밀었다. 북한은 미국인 억류자 세 명을 석방한 데 이어 핵 실험장 폐기 행사를 열기로 했고 추가로 ‘2020년 비핵화 완료’와 같은 ‘통 큰 딜’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문제는 ‘빅딜’ 이후 검증과 보상 과정에서 나올 이견과 불협화음이다.

◆美, 당근과 채찍으로 여론전

미국은 13일(현지시간) 북한에 비핵화 협상을 위한 메뉴판을 내밀었다. 비핵화의 개념과 방법, 보상까지를 망라하는 내용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방송에서 “비핵화란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고, 해체하고, 이를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핵·원자력 연구단지)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까지 제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주도로 핵무기부터 핵 물질 생산 가능성까지 제거해 북한을 완전하게 비핵화시키는 시나리오다.

볼턴 보좌관은 또 “이런 과정이 완료되기 전 보상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지금까지 나온 미국 정부 비핵화 발언 중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수위의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미 정상 간 통 큰 합의가 있은 뒤 구체적인 실무협상이 시작될 때 미국 측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은 확실한 보상책도 제시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체제 보장과 민간 투자 등을 약속하며 “북한 주민들이 고기를 먹고 건강하게 살도록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을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편입해 경제개발을 돕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지난 11일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 “시간은 우리 편”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요구대로 “2020년까지 비핵화를 보장한다”고 합의하더라도 향후 비핵화 검증 과정에선 최대한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크다. 외부에 북핵 관련 정보가 노출돼 있지 않아 북한으로선 운신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핵탄두가 대표적인 예다. 한·미 당국은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를 20~40기로 추정하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은 80%가 산악지대라 핵무기나 대량살상무기를 숨길 곳이 많고 수십 년간 미국의 인공위성을 피해 은폐하는 기술을 키워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20개라고 해도 믿어야 하고 40개 가지고 있어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단기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트럼프 행정부의 특성을 십분 활용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과정에서 미국이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는 대가로 적잖은 선물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을 석방하고 풍계리 핵시설을 폐쇄하는 것 외에 앞으로 내놓을 카드는 적지 않다. 일부 핵 시설을 폐기하고 대북 제재 완화나 해제를 얻어낸 뒤 나아가 경제 지원을 받을 것이란 설명이다. 궁극적으로 체제 보장을 받기 위해 정치적으로 북·미 간 연락사무소를 개설한 뒤 북·미 수교를 제안할 것이란 게 대체적 전망이다. 경우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수도 있다.

◆검증 절차·비용 부담 ‘첩첩산중’

문제는 북·미 간에 신뢰가 굳건하냐다. 아직은 서로 의지를 탐색하는 단계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은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미국이 비핵화를 종료하면 경제지원을 한다고 하지만 약속을 지킬지 믿을 수 없다”고 불평했다고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14일 보도했다. 핵을 포기했다가 정권 몰락을 자초한 리비아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내비친 것이다. 시 주석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해 포괄적으로 타결해야 한다”며 비핵화에 구체적 진전이 있어야 중국이 북한을 중간에 지원할 명분이 생긴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미국대로 ‘과거 실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완전한 검증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여기엔 북한 정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핵 무기를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사찰단계에서 구체적 대상과 범위 등을 놓고 ‘지나친 사찰‘에 반발하고 협상장을 뛰쳐 나와 ‘비핵국가로 포장된 핵보유국’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비핵화가 진행되더라도 보상은 한국 몫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차 북핵 위기 때 북·미 합의(제네바합의)로 시작된 북한 경수로건설 사업의 경우 전체 사업비 15억6200만달러 중 72%(11억3700만달러)를 한국이 부담했다.

워싱턴=박수진/도쿄=김동욱 특파원/정인설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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