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에너지절감 사업 비용도 한전이 부담하라는 정부

입력 2018-05-14 19:38   수정 2018-05-15 06:40

脫원전 정책에 2분기 연속 '적자 수렁'에 빠졌는데

성수영 경제부 기자



[ 성수영 기자 ] 한국전력공사는 올 1분기 1276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작년 4분기 영업손실로 돌아선 데 이어 2분기 연속 적자다. 국제 유가 급등 등 부정적인 외부 환경 변화도 작용했지만 주요 배경에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있다. 탈(脫)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한전은 값싼 원자력 전기 대신 비싼 신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 전기를 구매해야 했다. 정치적 부담 때문에 마음대로 전기료도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적자는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한전이 정부 정책으로 연간 200억원 이상 추가 부담을 또 떠안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6월부터 한전을 대상으로 에너지공급자 효율향상 의무화제도(EERS) 시범사업을 도입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EERS는 에너지공급 사업자에 에너지 수요를 감축할 수 있는 투자를 강제하는 제도다. 한전이 기업 등에 고효율 전동기를 보급해 전력 수요를 줄이는 식이다. 전력 수요가 줄면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신재생에너지의 단점이 상쇄된다. 에너지 전환 정책에도 탄력이 붙는다.

하지만 한전으로선 부담이다. 이번 시범사업 시행으로 올해 말까지 2016년 전력 판매량의 0.15%를 절감할 수 있는 투자를 해야 한다. 얼마를 투입해야 하는지조차 불확실하다. 한전 관계자는 “시범사업인 만큼 해봐야 비용과 편익을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해도 순이익이 200억원 넘게 감소할 수 있다. 전기 판매 이익이 줄어서다. 정부는 내년께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을 개정해 가스공사 등 다른 에너지 기업에도 EERS를 의무화하고 감축 목표도 해마다 올릴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또다시 한전을 에너지 전환 정책의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이미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 참여하고 있는 한전에 EERS를 도입하는 건 이중규제라는 분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주도한다는 유럽연합(EU)조차 전력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해 ETS와 EERS 중 하나만 도입하고 있다.

정부는 과거에도 에너지 정책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면 대표 공기업인 한전에 떠넘겨왔다. 이전 정부 때 민간 기업을 동원해 에너지 고효율 가전 할인 행사를 하면서 비용을 한전이 부담하도록 한 게 그런 사례다. 현 정부 들어서도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른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기업들에 급전지시(전기 사용량을 줄이라고 지시하는 것)를 내리면서 보상금을 한전이 충당하도록 했다. 지난달에는 한전이 일부 다세대·다가구주택 전기요금을 올렸다가 정부 지시로 한 달 만에 철회했다. 일반 주택 전기요금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조치였으나 민원이 쏟아지자 화들짝 놀란 정부가 ‘시행 유보’로 돌아선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한전 돈을 ‘쌈짓돈’처럼 쓰는 사이 한전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08조4000억원까지 치솟았다. 한전 적자가 누적되면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벌충해야 한다. 이는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날 발표한 EERS와 관련해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정부는 무턱대고 ‘시범사업’임을 강조하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산업부는 “장기적으로 전력 수요가 감소해 한전의 발전소 투자비용이 줄어들면 한전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면서도 명확한 수치는 내놓지 못했다. 정부가 국민 혈세로 탈원전이라는 이상을 실험하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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