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지하철 공사 효과'와 전환시대의 논리

입력 2018-05-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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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정상국가 대 정상국가'의 經協
비싸도 확실할 때 투자하는 건 선택이지만
이젠 전환시대 논리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

이상진 < 신영자산운용 고문 >



‘지하철 공사 효과’라는 것이 있다. 지하철 공사 중에는 주변 상가나 건물 값이 별로 오르지 않는다. 몇 년 뒤면 지하철이 완공되고 소위 ‘역세권’ 프리미엄이 생길 것이 뻔한데도 공사 중에는 관심 밖이다. 공사 기간에 소음과 분진이 심하고 교통도 막히니 장사에 지장이 있다. 공사가 지연될 수도 있기 때문에 비싸게 주더라도 확실하게 끝난 다음에 사겠다는 것이다.

지금 남북경협 관련 주식들이 지하철 공사 효과와 비슷한 상황이다. 일부 종목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임상시험 중이라는 말 하나로 수십 배 폭등하던 바이오 종목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우선 남북 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는 70년의 불신이 있고, 과거 수차례 실패 사례가 보여주듯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숨어 있는” 것이 여전히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북 회담 결과가 발표된 다음 움직여도 늦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다. 또 설사 모든 것이 잘 풀린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평가하기가 쉽지 않아 기다려도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당연히 남북 문제의 접근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세계 각국 3000여 명의 기자 앞에서 두 정상이 선언문에 서명한 것은 남북 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다. 4대 강국에 대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라는 강력한 요청이기도 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가능하다면 북한과 평화체제 구축이 수지맞는 장사다.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러시아도 중국 견제구로 남북한을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베리아와 동북아 경제의 연결이 숙원사업이다. 중국과 일본의 속내는 복잡하겠지만 대세를 거스르기보다는 일단 따르는 편이 명분과 실리를 관리할 수 있다.

이제 한반도는 역사적인 대전환기로 들어섰다. 물론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대해 우려 반 기대 반이 있다. 대부분 ‘퍼주기와 막대한 부담’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당연히 부유한 한국이 북한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정전체제라는 ‘반(半)불구’ 상태에서의 경제협력이 아니라 남북한이 평등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복원하면서 하는 전면적인 경제협력이라면 예전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상식적 얘기인 북한의 우수한 인력과 한국의 자본과 기술력의 시너지가 아니라 ‘북한의 정상국가화’가 가져다줄 동북아 경제 시너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간단한 예로 철도로 유럽까지 수송하면 물류비가 절반 가까이 준다. 또 시베리아 가스가 북한을 통한 파이프로 들어오면 가격은 파격적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시간이 걸린다. 북한과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도로와 철도를 건설해야 하고 에너지와 식량을 지원해야 하고 전력망을 구축해야 한다. 당연히 수십 년에 걸쳐 진행해야 할 사업들이다. 그러니 당장 ‘막대한 부담’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글로벌 자본의 관심도 뜨겁다. 세계 각지에 넘쳐나는 돈이 북한의 개방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북한에 투자하기 위해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평화에 대한 손익계산서는 작성이 불가능하다. 단순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아니다.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지불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너무 많이 치르고 있다. 그 비용만 절감해도 북한 경제 복구 비용의 상당 부분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1500달러의 공산체제 북한과 3만달러의 자본주의 한국 간 ‘정상국가 대 정상국가’의 경제협력은 경제학사에서 처음 시도해 보는 놀라운 프로젝트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결과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지하철 공사가 끝나고 비싸더라도 ‘확실할 때’ 사도 된다. 그건 투자자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제는 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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