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고층 - 공시가 오르면 세금 늘지만 부담금 줄어
왕궁·압구정 - 일반분양 없는 '1대 1 재건축' 추진
[ 최진석/선한결 기자 ]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재건축 절차를 밟고 있는 한강맨션 재건축추진위원회는 단지와 접해 있는 강변북로를 공원으로 덮는 ‘덮개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와 이촌한강공원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강변북로를 구조물로 덮어 위로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한강으로 접근하고 아래로는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덮개공원 규모는 가로 400m, 세로 45~55m로 면적이 2만㎡에 달한다. 추진위는 조성비용이 105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업용 한강맨션 추진위원장은 “덮개공원은 아파트 환경 개선과 함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시행을 앞두고 부담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낸 아이디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울 주요 재건축 추진단지들이 앞다퉈 재건축 초과이익환수금액(재건축 부담금)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잠원동 반포현대 아파트가 조합원 1인당 1억3569만원에 달하는 부담금 추정치를 통보받자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인식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어서다. 한강맨션과 같이 아파트 주변 시설 개선, 특화설계 등을 통해 고급화하려는 조합들은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아직 재건축추진위원회를 설립하지 않은 단지들은 한국감정원에 공시지가를 올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재건축 사업 추진 자체를 재검토하는 단지까지 나왔다.
조합 전전긍긍… “사업 중단도 검토”
부담금 추정치가 조합의 기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경우 사업을 재고할 수 있다는 조합도 나왔다. 서울 강남구 대치쌍용2차 조합 관계자는 “추정치 액수가 과도하면 사업 추진 여부나 방식 등을 놓고 조합원들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근 대치쌍용1차에선 최근 일부 조합원이 ‘부담금 폭탄’이 우려된다며 재건축 사업 진행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조합원 일부는 많은 부담금을 우려해 사업을 연기하거나 1 대 1 재건축을 검토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추진위 설립을 준비 중인 개포주공 5~7단지 주민 일부는 지난달 초 한국감정원에 ‘공시지가를 상향 조정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공시지가가 오르면 재산세가 늘어난다. 재건축 부담금 폭탄이 늘어나는 재산세보다 무섭다는 게 공시지가 상향 조정을 요구한 주민들의 판단이다. 개포주공 5단지는 재건축추진위 설립시점을 내년으로 미뤘다. 개포 6·7단지도 사업 일정을 늦추기로 했다.
1 대 1 재건축을 추진하는 곳도 있다. 서울 용산구 왕궁아파트와 강남구 압구정 3구역이 대표적이다. 1 대 1 재건축을 하면 아파트 면적을 늘릴 수 있어 조합원들이 큰 아파트에 살 수 있다. 250가구 규모의 왕궁아파트는 지난 11일 기존 가구 수를 유지하는 내용의 재건축 정비계획 변경안을 서울시에 입안 신청했다.
조합 관계자는 “1 대 1 재건축을 하면 개발에 따른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부담금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준공 시점에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다면 추진위 설립 시점 가격과 차이가 크기 때문에 많은 부담금을 낼 수도 있어 이 점을 걱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생 살던 아파트 떠나야 할 판”
새 아파트 개발비용을 높여 부담금을 낮추는 방법은 대부분 조합에서 추진하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재건축 부담금 부과 대상인 조합들은 재건축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을 세금으로 내는 것보다 아파트 단지 품질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강맨션은 덮개공원과 함께 단지 내 수영장과 실내 테니스장, 피트니스센터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9900㎡ 규모로 지상과 지하에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사비가 크게 늘어나면 그만큼 개발이익이 줄어 재건축 부담금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재건축정비사업계획은 서울시의 교통영향평가를 받고 있다. 송업용 위원장은 “이달 안으로 교통영향평가가 마무리되면 이후 건축심의를 받는다”며 “개발이익을 줄이려는 여러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지만, 재건축 절차를 밟을수록 재건축 부담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구 수가 80가구로 작은 규모인 반포현대가 1억4000만원에 달하는 부담금 예상액을 통보받은 뒤로 단지 규모가 큰 재건축 단지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경고처럼 조합원당 8억원이 넘는 부담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서울 강남구 A아파트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 중 억대 부담금을 낼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아파트를 팔고 나가야 한다”며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대출도 쉽지 않고 이를 갚을 능력도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살던 아파트를 떠나야 한다. 이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용산의 B아파트 조합 관계자는 “재건축으로 인해 아파트 시세가 오를 수도 있지만 경기침체가 심화되면 급락할 수도 있다”며 “준공 시점의 아파트 시세로 부담금을 낸 뒤 가격이 하락하면 많은 부담금을 낸 입주민들은 또 한 번 재산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최진석/선한결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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