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때 삼밭이었던 마곡

입력 2018-05-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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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마곡동(麻谷洞)은 예부터 삼(麻·마)이 많이 나는 동네였다. 중심 마을 이름인 마결(麻結)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한때는 서울월드컵경기장 후보지로 꼽혔으나 경기장이 상암동으로 결정된 뒤 도시개발사업 후보지로 용도가 바뀌었다.

마곡역은 1996년 지하철 5호선 개통 때 생겼다. 그러나 허허벌판에 정차할 이유가 없어 12년간 무정차역으로 머물다 2008년에야 정차역이 됐다. 그때까지도 진흙밭이었던 이곳이 10년 만에 첨단 연구단지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지하철 3개 노선(5·9호선·공항철도)에 6개 역사가 있고 김포공항까지 5분, 인천공항까지 35분이면 갈 수 있는 교통요지다.

외국 인력 유치나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 조건도 그만큼 좋아졌다. 땅을 싼값에 공급하고 최적의 연구·개발 여건을 조성하자 자연스레 기업들이 몰렸다. 입주 계약을 맺은 기업 137곳 중 41곳이 벌써 들어왔다. LG그룹은 4조원을 들여 국내 최대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지난달 개소했다.

코오롱그룹도 코오롱 원앤온리타워를 열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6월 식품종합연구소 롯데R&D센터를 짓고 가동에 들어갔다. 양평동의 기존 연구소보다 5배 큰 규모다. 내년 이화여대 서울병원이 문을 열면 의약 중심산업단지인 BMT 클러스터까지 활성화될 전망이다. 1000여 개 강소기업도 들어올 예정이다.

단지 중앙에는 여의도공원의 두 배 규모인 서울식물원이 조성된다. 코오롱이 추진 중인 미술관 ‘스페이스 K 서울’과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LG아트센터’(가칭)가 완공되면 문화예술의 향기까지 더해진다.

그동안 R&D단지는 정부 주도로 지방도시에 주로 세워졌다. 마곡은 서울 시내에 조성된 민간 주도 단지라는 점에서 다른 곳과 차별화된다. 첨단 연구 인력 유치에 유리하고, 개발 면적이 판교보다 세 배 이상 큰 것도 장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LG사이언스파크 개장식에 참석해 “정부는 여러분이 마음껏 연구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혁신성장 생태계를 조성하고 신기술, 신제품 개발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겠다”며 “우선 시범사업이 가능하도록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고, 기술개발과 창업 지원을 대폭 확대할 테니 혁신성장의 모범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어제도 이곳에서 ‘혁신성장 보고대회’를 열어 “정부의 의지를 믿고 기술 개발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 관련 법안은 낮잠을 자고 있다. 마곡단지 연구자들은 “삼밭이 첨단 연구단지로 바뀐 ‘상전벽해의 변화’를 따라잡으려면 ‘갈라파고스 규제’를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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