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화이트 지음 / 이두갑 김주희 옮김 / 이음 / 256쪽│1만5000원
[ 서화동 기자 ]
미국 서부와 캐나다 남서부를 흐르는 길이 2000㎞의 컬럼비아강은 한때 수많은 연어의 서식지였다. 태평양에서 일생을 보낸 연어들은 산란기가 되면 이 강의 하류부터 거대한 협곡이 즐비한 상류에 이르기까지 고향을 찾아왔다. 그 덕분에 인디언들은 철마다 연어를 잡아 주요 식량으로 삼았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특정 장소에 산란하기 때문에 인디언들은 그 혜택을 골고루 누렸다.
하지만 백인들이 들어오면서 이런 풍경은 확 달라졌다. 증기선을 동원해 대량으로 잡은 연어는 통조림공장으로 보내졌다. 인디언들이 연어를 수확, 가공, 운송하는 것은 대부분 소량인 데다 비기계적인 방식에 머물렀다. 반면 통조림공장들은 증기기관을 이용해 대규모로 잡아올리고 가공·운송했다. 밤새 잡힌 연어를 퍼 올리기 위한 물레방아는 그야말로 연어를 ‘퍼 올렸다’고 했을 정도다.
1889년 이런 모습을 본 저널리스트 러디어드 키플링은 기계가 사람들의 노동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켰다며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자연을 향유하는 ‘원시주의’를 주장했다. 하지만 시인이자 철학자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산업혁명을 “자연으로 향하는 기차여행”이라고 여겼다. 기계란 자연을 새로운 형태로 실현시킨 것이며, 자연과 합쳐져 하나의 전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자연기계》는 환경사(史)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한 리처드 화이트 미국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석좌교수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개발이냐, 자연환경 보존을 위한 개발 중단이냐와 같은 이분법적 논의에 반대한다. 대신 인간과 자연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관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환경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서로 떼놓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컬럼비아강은 이런 관점에서 환경사를 다루기 위한 분석 대상이다. 그는 컬럼비아강과 인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탄생한 수많은 산물을 ‘자연기계(organic machine)’이라고 이름지었다. 자연기계는 강을 바꿔놓은 댐뿐만 아니라 인공 부화장에서 태어난 연어들, 원자력 개발로 인한 방사능물질, 컴퓨터로 모델링한 가상의 강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낳은 수많은 혼종, 즉 혼합물이다.
강은 오래도록 인디언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들은 컬럼비아강으로 회귀하는 연어를 통해 에너지를 획득하고 사회를 유지했다. 서부개척 시절엔 백인들도 이 대열에 가세했다. 연어잡이 경쟁이 가열되면서 많은 자본을 지닌 백인들은 어량과 고기잡이용 물레방아를 설치해 어획량을 늘렸다. 인공부화장을 설치해 연어를 공장식으로 생산하는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세계 최대 인공구조물이던 그랜드쿨리 댐이 건설되면서 돌아오는 연어의 숫자는 급감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로키산맥에서부터 미국 워싱턴주를 흐르는 가파른 물길은 수력발전에 탁월한 입지였다. 댐은 그랜드쿨리로 끝나지 않았다. 강의 본류는 물론 지류 곳곳에 댐이 건설됐고 더 많은 전기를 생산했다. 1952~1958년에는 매년 1~3개의 댐이 새롭게 가동됐고, 컬럼비아강과 대부분의 지류 댐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하나의 송전망으로 연결했다.
하지만 자연은 늘 가변적이다. 강수량이 적을 땐 전기생산량이 급감하자 이를 보완할 화력발전소를 함께 세웠고, 나중에는 원자력발전소까지 건설했다. 강력하고 집중적인 관리에도 불구하고 급감한 연어 어획량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상류로 회귀하는 연어의 사망률이 댐마다 평균 5~10%에 달했다. 인공부화장에서 수정된 열등한 물고기여서 거친 강물의 흐름과 염도가 높은 바닷물에 적응하지도 못했다. 저자는 “컬럼비아강은 자연기계가 됐고, 인간은 자신이 창조해낸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이를 관리했다”고 실패의 이유를 지적한다. 그렇다고 컬럼비아강의 개발을 단지 비난만 하는 것 역시 자연기계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우리는 이 강을 단순히 자연으로 간주하고 그외 모든 댐과 부화장, 수로, 펌프, 도시, 목장, 펄프공장을 여전히 조화로운 자연계에 존재하는 흉하고 쓸모없는 얼룩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그들은 현존하는 컬럼비아강의 일부다. 이 모두는 우리의 창조물이자 우리의 제어를 벗어나 자신의 생명력을 지닌 존재들이다.”
옮긴이들은 개발론과 환경론을 넘어서는 대안을 마련하려면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유기적 전체를 이루며 상호작용하는 동적인 자연기계라는 점을, 그렇지만 이 자연기계를 인간이 완벽히 제어할 수 없으며, 자연 그 자체의 리듬과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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