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다국적사에 휘둘리는 '백신 주권'

입력 2018-05-20 17:56  

양병훈 바이오헬스부 기자 hun@hankyung.com


[ 양병훈 기자 ] “왜 누구는 세금으로 비싼 백신을 맞고 누구는 흉터가 남는 값싼 주사를 맞나요. 딸에게 저렴한 주사를 맞혀야 하는 부모는 역차별당하는 기분입니다.”

흔히 ‘불주사’라고 부르는 피내용 결핵예방(BCG) 백신 공급을 다음달 정상화할 계획이라는 질병관리본부 발표가 최근 나오자 결핵 접종을 앞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흉터가 남는 피내용 BCG 접종을 해야 할지, 아니면 7만원 이상을 부담해 흉터가 덜 남는 경피용 BCG 접종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경피용 BCG 백신은 작은 바늘이 여러 개 달려 있어 도장을 찍듯이 피부에 대고 꾹 누르는 방식으로 접종한다. 흉터가 적게 남는 대신 가격이 비싸고 국가예산 지원이 안 된다. 정부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피내용 BCG 백신 공급이 끊기자 지난해 10월부터 예외적으로 경피용 BCG 백신에도 일시적으로 국가예산을 지원해 무료 접종을 해왔다. 하지만 피내용 BCG 백신 공급이 정상화되면서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피내용 BCG 백신의 수급 불균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백신은 2015년에도 약 4개월간 국내 공급이 중단됐다. 덴마크 제약사 AJ가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공급 중단 사태가 빚어진 탓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일본산 피내용 BCG 백신을 일부 수입해 보건소에서만 주사해왔다. 이 때문에 만성적인 물량 부족을 겪어왔다.

업계에서는 백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백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BCG 백신뿐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전량 수입하는 폴리오(소아마비) 백신 역시 지난해 4~11월 국내 공급이 끊겼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으로 오던 물량을 이들 국가로 돌렸기 때문이다.

감염병을 막는 백신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다. 우리는 이미 메르스 신종플루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한국은 28개 예방 접종 백신 가운데 절반인 14개만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백신 대란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보건당국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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