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은 '배고픈 소크라테스'라는 질적 쾌락으로 방어했죠
세 살에 그리스어를 배우고 다섯 살 때 그리스 고전을 독파하다. 여섯 살 때 기하학과 대수를 익히고, 일곱 살 때 플라톤 대화편을 원서로 읽다. 여덟 살 때 라틴어를 공부하고 라틴어로 고전을 읽고, 열 살 때 뉴턴의 저서를 공부하고 로마 정부의 기본이념에 관한 책을 쓰다. 열한 살에 물리학과 화학에 관한 논문들을 두루 읽고, 열두 살 때 아리스토텔레스, 열세 살 때 애덤 스미스를 공부하다. 이것은 영국의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비범한 천재 존 스튜어트 밀
밀은 비범한 천재였다. 하지만 밀은 당시 철학자였던 아버지 제임스 밀이 베푼 엄격한 ‘교육 실험’의 대상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밀을 3세부터 14세까지 개인적으로 집에서 가르쳤다. 요즘으로 말하면 조기 영재 교육인 셈이다. 이 시기에 밀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대신 아버지를 따라 분석적 사고를 훈련하고 고전을 원서로 읽었던 것이다. 밀은 그의 자서전에서 ‘나에게는 소년 시절이 없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단계를 건너뛸 수 없는 법. 스무 살에 밀은 신경 쇠약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지적으로는 그는 또래 친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지진아였던 셈이다. 다행히도 이와 같은 밀의 지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의 불균형은 이후 시를 비롯한 예술 등 다양한 정서적인 활동을 통해 회복되게 된다.
벤담의 공리성에 푹 빠지다
밀은 젊은 시절 벤담의 《도덕 및 입법의 원리》라는 책을 읽고, “그것은 나의 사상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그 책에서 밀은 벤담의 ‘공리성의 원리’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하나의 통일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은 벤담의 공리성의 원리를 자신의 단 하나의 철학으로 삼고 이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을 자기 인생의 주요한 목적으로 삼았다. 자신이 이처럼 따르던 벤담의 철학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자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벤담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으로 칼라일과 같은 철학자는 벤담의 철학을 두고 인간의 행복을 모두 양적 쾌락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동물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돼지의 철학’이라고 혹평했다. 이에 대해 밀은 벤담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쾌락에 대해 양적으로 접근하는 벤담의 방식을 수정해 쾌락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질적 공리주의’의 입장을 취했다.
그렇다면 어떤 쾌락은 고급의 쾌락이고 어떤 쾌락은 저급한 것인가? 이에 대해 밀은 질적으로 다른 쾌락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방법으로 ‘쾌락의 전문가’ 도입을 제시한다. 비교하려는 쾌락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들이 선택하는 쾌락이 질적으로 높은 쾌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두 가지 쾌락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쾌락이 다른 쾌락에 비해 항상 그 양이 적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쾌락을 선택한다면 바로 그 쾌락이 더 값진 쾌락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밀은 쾌락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다음의 명언으로 압축해 제시하고 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오히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또한 만족한 바보가 되느니 차라리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주장이다. 이 명언에서 밀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저급한 존재로 만족하기보다 불만족하는 우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존엄한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인간은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유와 존엄성의 실현에 기여하는 고급 쾌락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모순에 빠지다
밀은 쾌락에 질적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벤담의 공리주의에 포함된 난점을 완화시켰다. 하지만 밀의 주장은 벤담에게는 없었던 새로운 난점을 끌어들였다. 쾌락의 질적 차이를 논한다는 것은 결국 쾌락 이외에 또 다른 도덕적 평가 기준을 인정하는 모순에 빠진다는 점이다. 이는 쾌락주의의 기초를 뒤흔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쾌락주의에 따르면 쾌락은 도덕적 가치 평가의 유일한 기준이다. 그런데 밀은 쾌락에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쾌락 이외의 또 하나의 평가 기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밀의 입장은 결국 쾌락주의의 바탕을 떠나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쾌락의 등급을 측정할 기준은 쾌락 자체 안에서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해주세요
“만족한 돼지보다는 오히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또한 만족한 바보가 되느니
차라리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주장에서 밀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저급한 존재로 만족하기보다 불만족하는 우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존엄한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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