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구본무와 의인들

입력 2018-05-22 00:56  

2013년 3월, 바다로 뛰어든 사람을 구하려다 희생된 인천 강화경찰서 소속 고(故) 정옥성 경감의 영결식이 열렸다. “새우 먹고싶다”며 보채던 딸과 주고받은 마지막 문자 메시지 내용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경영진과 함께 버스를 타고 협력회사로 이동하던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유가족에게 위로금 5억원을 내놓았다. 자녀 3명의 학자금까지 책임졌다.

그제 타계한 구본무 회장은 2014년에도 세월호 사고 수습 중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소방관 5명의 유가족에게 총 5억원을 지원했다.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로 다리를 잃은 장병 2명의 치료를 위해서도 5억원씩을 내놨다. 2015년 9월부터는 의인(義人)에 대한 보답을 체계화하기 위해 ‘LG의인상’을 제정했다.

LG의인상 첫 수상자는 고(故) 정연승 특전사 상사다. 교통사고를 당한 여성을 구하려다 신호 위반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은 그는 평소 장애인 시설과 양로원에서 봉사하며 결식아동을 도운 인물이었다. 지금까지 소방관·경찰관·고교생·크레인 기사 등 72명이 LG의인상을 받았다.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의식을 잃은 운전자의 차량을 세우기 위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참사를 막은 한영탁 씨는 구 회장 생전의 마지막 의인상 수상자가 됐다. 구 회장은 의인상 수상자를 특별채용하기도 했다.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시각장애인을 구한 젊은이는 올해부터 LG화학에서 일하고 있다.

상금을 기부한 사람도 많다. 표류하는 배의 선원 6명을 구한 여수 해경 신승용 구조대장 등 5명은 장학회와 사회복지관에 5000만원을 보냈다. 기도가 막힌 시민을 응급처치로 구한 반휘민 해군 중위는 노숙자 보호시설에 전액을 기부했다.

LG의인상의 뿌리는 그룹 창업주의 ‘독립운동 지원’과 맞닿아 있다. 구인회 창업주는 선친에 이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돕는 데 거액을 희사했다. 발각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대를 이은 헌신·봉사의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구 회장은 의인상과 별도로 사재를 내놓곤 했다. 지난해에는 철원 사격 훈련장의 빗나간 총탄 때문에 아들을 잃고도 “어느 병사가 쐈는지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고 한 아버지에게 감명 받았다며 자기 돈 1억원을 내놓았다. 사회가 팍팍할수록 이 같은 의인과 의인을 돕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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