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좋고 열매도 많이 맺는 나무는 뿌리가 깊단다. 한글 창제에 이어 만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한 대목에 따르면 그렇다. 원문에서 ‘열매’는 ‘여름’으로 나온다. 이 여름과 우리가 지금 맞이하려는 계절 여름은 상관이 있다.
본래는 여름이라는 낱말이 해(日), 나아가 농사를 통해 열매를 가꾸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여름은 일조량이 가장 풍부해 농사가 활발해져 열매를 맺는 계절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여름을 가리키는 한자 夏(하)의 초기 형태를 보면 사람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손에는 칼이나 낫으로 보이는 기물(器物)을 들고 있는 꼴이다. 따라서 농사일에 열심인 사람의 모습이라고 푼다.
여름을 일컫는 한자 낱말은 제법 많다. 햇빛이 가장 강렬해 더위를 가리키는 글자가 많이 등장한다. 염천(炎天)은 우리에게 낯익다. 불꽃(炎) 같은 날씨(天)를 일컫는다. 같은 맥락의 낱말이 炎暑(염서), 炎節(염절), 염하(炎夏)다.
햇빛이 충만해 붉은 기운을 많이 지닌다고 해서 朱夏(주하), 朱明(주명), 朱火(주화) 등으로도 불렀다. 長(장영)이라고도 하는데, 자라고(長) 차오른다(=盈)는 뜻이다. 회화나무에 꽃이 핀다고 해서 槐序(괴서)라고도 했다.
여름에는 열매를 가리키는 단어 ‘과실(果實)’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앞의 果(과)는 나무(木) 위에 달린 열매를 직접 표현하고 있다. 實(실)은 집()에 재물(貝)을 담는 그릇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이로써 ‘채우다’ ‘채워지다’의 뜻, 나아가 꽃이 떨어진 뒤 맺어지는 열매의 의미를 얻었다. 따라서 우리는 흔히 식물이 열매 맺는 일을 결과(結果), 결실(結實)로 적는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를 표현하는 단어는 부실(不實)이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은 영 아닌 경우가 華而不實(화이부실)이다.
남북한 정상회담에 이어 곧 미국과 북한의 운명적인 대화의 장이 펼쳐질 모양이다. 아주 어렵게 걸어온 길이다. 단단하고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포장만 그럴듯한 상태로는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이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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