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렬하고 압도적인 배우들의 명연기, 반전 가득한 스토리, 감독의 섬세한 연출, 화려한 영상미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독전'(감독 이해영)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 독주를 펼치고 있다.
'독전'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 액션 영화다. 극 중 형사 '원호'를 연기한 조진웅, 버림받은 마약 조직원 '락'을 연기한 류준열을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독전'은 노르웨이 설원 속 한 집 안에서 원호(조진웅)와 락(류준열)이 마주 앉아 있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마지막을 장식한 조진웅과 류준열. 하지만 두 배우가 생각하는 결말은 너무나도 달랐다.
◇ 조진웅 "락이 원호를 죽였을 것 같아요."
"이 영화 꼭 안 봐도 돼요." 조진웅이 애정 섞인 짜증을 부렸다. 이유는 결말에서 류준열이 내뱉은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자신이 그렇게 잡으려 했던 조직의 숨겨진 보스 락을 놓치고 노르웨이에 숨어 살고 있는 그를 다시 찾아낸 뒤 원호가 받은 질문이다.
"엔딩에서 정말 할 말이 많은데 어떤 단어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했어요. 죽이면 끝인데 왜 그러지 못하고 있을까, 이 영화는 왜 원호와 관객에게 그 질문을 던질까 생각이 들었죠."
조진웅은 이 감독에게 짜증도 냈다. 단지 오락 영화일 뿐인데, 조진웅의 인생에 있어 아주 큰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저는 엔딩을 배제하고 달려갔어요. 어떤 친구들은 열린 결말이 좋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예요. '살면서 행복했던 적 있냐?'라고 물어보는 것도 락에게 하는 질문인지 저에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열린 결말은 답답함이 해소되지 못 할 수도, 관객이 생각하는 대로 결론을 맺을 수도 있어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원호가 락을 죽이고 손에 피를 묻힌 채 문을 열고 나오는 또 다른 결말도 찍어놨지만 감독에겐 지금의 이 엔딩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원호를 직접 연기한 조진웅의 생각은 달랐다. 총을 잡아서 락에게 준 뒤 눈빛을 보내고 창밖을 보면 '내가 너한테는 죽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락을 보기 위해 왔으니까 자살을 할 것 같진 않다는 게 조진웅의 생각이다.
"저처럼 짜증을 느낀다면 이 영화는 안 보는 게 나아요. 40살 넘게 살아오면서 저에게 처음 던져진 질문이에요. 이걸 느끼는 관객이 있다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동질감이 느껴지니까요."
◇ 류준열 "누가 죽었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류준열에게 '독전'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배우는 보통 시나리오 안에서 인물에 대한 답을 찾고 캐릭터를 완성시켜나가는데 '독전'엔 인물들의 배경과 설명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막막한 류준열은 '전사가 없는 게 전사다'라는 생각으로 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한 번 웃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의 미소는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어요. 배우들이 흔히 역할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한다고 말하는데 전 공감할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괜히 울적하고 외롭고 공허한 감정이 생겼어요. 참 재미있는 경험을 했죠. 그래서 웃는 신에서 통쾌한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류준열이 가장 고민한 건 엔딩 신이었다. 노르웨이에서 락과 원호는 그전엔 없던 새로운 감정으로 재회하게 된다. 류준열은 자신이 느낀 답답함을 이 장면 하나로 해소하고 싶었다고.
"마지막 장면을 찍고 조진웅 선배님과 포옹을 했는데 단순히 '고생했다'는 느낌보다 락과 원호의 감정이 마무리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비로소 락이 누구인지 알 것 같으면서 영화 촬영이 끝났죠."
'독전'을 관람한 어떤 이들은 '락이 원호를 죽였다', 또 어떤 이들은 '원호가 자살했다' 등 엔딩에 대해 여러 추측을 내놨다. 하지만 류준열에게 결말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전 감독님이 찍자고 하면 찍는 거고, 감독님이 끝이라 하면 저도 거기까지가 제 연기인 거예요. 누가 죽었는지 알 수 없으면 결말도 그냥 '누가 죽었어?'라는 질문으로 끝날 뿐이에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락과 원호의 삶과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한예진 한경닷컴 기자 geni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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