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라도 복지정책이 발표되고 나면 어김없이 뒤따르는 질문이 있다. “돈은 있나?”라는 것이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기자, 정치인, 심지어 필자의 친척과 친구들까지 한결같이 묻는 질문이다. 문제는 그 바탕에 복지를 위한 돈이 없을 것이라는 깊은 불신과 불안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불신은 한국에서는 복지가 불가능하다는 믿음으로 퍼져 간다.
한국은 정말 복지를 할 돈이 없는 나라인가? 답은 “있다”이기도 하고, 동시에 “없다”이기도 하다.
“있다”인 이유는 한국이 이미 부자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5380억달러로 세계 11등, 1인당 GDP는 2만9891달러로 세계 28등이다(국제통화기금 통계치). 이런 나라에 복지를 위한 돈이 없을 리 없다. 서구 여러 나라가 복지를 시작하던 시절, 지금의 한국보다 훨씬 가난했다.
“없다”인 이유가 중요한데, 그것은 ‘정부’에는 정말 돈이 없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 총지출 비중은 32.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4.0%다. 재정 비중이 낮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국가 일본(39.0%)과 미국(37.8%)보다도 현저히 낮다. 한국은 국민경제에서 국가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나라다. 이런 특징은 경제와 사회 전반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된다. 복지에 쓸 재정 규모도 작을 수밖에 없다.
“없다”가 더욱 맞는 답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한국이 총예산에서 복지예산을 유난히 짜게 배정하는 나라라는 점이다. 2016년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보건, 복지, 노동 등 광의의 복지) 비중은 한국 10.4%, OECD 평균 21.0%, 미국 19.3%로 격차가 크다.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니 복지에 쓸 돈이 없을 수밖에 없다.
올해 한국의 사회지출예산은 145조8000억원이다. 사회지출예산을 OECD 기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만큼 쓴다고 가정하고 역산을 해보면 270조6000억원이다. 정말 이만큼의 예산이 주어진다면 지금 “돈이 있냐?”고 추궁당하는 모든 복지사업을 다 하고도 남을 것이다. 어린이도, 장애인도, 치매환자도, 노인 자살도 다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복지에 쓸 돈이 있느냐?”는 우문에 대한 현답은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있다”이고, 국가재정 측면에서는 “없다”이다. 요컨대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정부’가 그 실상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