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해도 모자랄 판에"… 신제품 개발 기간 늘려 잡는 삼성전자

입력 2018-05-29 17:38   수정 2018-05-30 16:03

눈앞에 다가온 근로시간 단축

주요 기업들, 근로시간 단축 대책마련 '비상'

현대·기아차, 유연근무제 시범 운영
'오전 10시~오후 4시' 빼곤 자율 근무
현장 혼란 여전… 경쟁력 하락 우려도



[ 장창민/좌동욱/박상익/안재광 기자 ] 삼성전자가 7월1일부터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재량근로제’를 도입한다. 갈수록 빨라지는 제품 교체 주기에도 불구하고, 휴대폰과 TV 등 신제품 개발 기간은 기존보다 최대 6개월가량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연구개발(R&D) 부문 직원들의 업무시간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최근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기반으로 한 유연근무제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국내 간판 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당장 인력을 늘리기보다 생산성을 높이고 직원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당초 취지와 달리 기업들의 추가 고용은 예상보다 많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잇따라 유연근무제 도입

삼성전자는 7월부터 사무직과 R&D 부문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재량근로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29일 발표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한 달 범위에서 총 근로시간을 정해 놓고 출퇴근 및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제도다. 근로시간뿐 아니라 업무 수행 방법까지 근로자가 정하는 재량근로제는 신제품 개발을 맡은 특정 부서에 제한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생산라인에선 ‘3개월 단위’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1~3년 걸리던 제품 개발 주기도 기존보다 3~6개월 늘리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매년 신제품을 내놓는 휴대폰과 TV 사업부가 적용 대상이다. 신제품 개발 기간이 늘어나면 글로벌 ‘속도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현대·기아차도 이달 초부터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에 기반을 둔 유연근무제를 시범 운영 중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의무적인 집중 근무시간만 정해 놓고 출퇴근 시간 등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대신 직원들은 자신의 구체적 근무시간을 사내 통합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흡연이나 화장실 이용 등은 업무시간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 운영 대상은 일반직(사무직)과 연구직(남양연구소 등) 직원이다. 생산직은 ‘8+8 주간 2교대제’이기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일자리 창출 여부는 미지수”

LG전자는 지난 2월부터 R&D 부서를 중심으로 한 주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하루 최소 4시간, 한 주 40시간 범위 내에서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도 비슷한 방식의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7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은 4월부터 ‘2주 8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주에 50시간 일하면 그 다음주에 30시간만 일해도 된다. 직원들은 2주 단위로 근무 계획을 미리 등록하고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한화케미칼도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출근시간을 정하는 ‘시차 출퇴근제도’를 시행한다.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우선 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 과정부터 논란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직원마다 자신의 근로시간을 사내 시스템에 입력하고 부서장이 이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의견 차가 생길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업종 특성이나 개별 기업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 경쟁력만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기업들의 불만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건설 및 플랜트 등 특성상 주 52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업종이 적지 않은 데다 어디까지를 근로시간으로 볼지에 대한 기준과 정부 지침도 명확하지 않아서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의 이유로 내세우는 일자리 창출 역시 담보할 수 없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인력을 10% 이상 더 뽑아야 하지만, 인건비 부담 탓에 업무 효율 확대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동화 설비를 더 들여놓거나 계약직 직원만 충원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기업으로선 정규직을 더 늘리면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닥쳐도 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에 추가 고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선택적 근로시간제

한 달 단위로 미리 정한 총 근로시간 범위 내에서 출퇴근 시간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제도.

■ 탄력적 근로시간제

최대 3개월 기간 이내에서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주당 최대 52시간)에 맞춰 운용하는 제도.

■ 재량근로제

연구직 등 일부 직종에 한해 근로시간과 업무수행 방식을 노사합의로 근로자 재량에 맡기는 제도.

장창민/좌동욱/박상익/안재광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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