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엔 유해물질 제거 측정할
공인된 실험 방법 없는데…
[ 고재연 기자 ] ‘독감 H1N1 바이러스 제거율 99.68%, 대장균 제거율 99.99%…. 유해물질, 각종 바이러스, 박테리아, 세균을 제균해 건강을 지켜줍니다.’
삼성전자가 자사 공기청정기의 ‘바이러스닥터 제균기능’을 홍보하는 문구다. 제균 기능을 중시하는 소비자를 겨냥했다. 대부분 공기청정기 제조사가 주요 연구기관 실험 결과를 토대로 ‘유해 바이러스 99.9% 제거’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9일 삼성전자를 포함해 코웨이, 위닉스, 청호나이스, 쿠쿠, 에어비타, LG전자 등 7개 업체를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적발하고 LG전자를 제외한 6곳에 과징금 15억6300만원을 부과하자 업체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공정위는 제한된 실험실에서 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광고하면 소비자가 실생활에서도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잘못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본 제거율은 상기 실험조건이며, 실사용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광고에 포함했는데도 제재 대상이 됐다. 이 같은 관행적인 문구로는 소비자의 오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공기청정기 유해물질 제거율을 측정할 수 있는 공인된 실험 방법은 없다. 한국에서 공기청정기를 출시할 때는 전자파 발생 정도 등 제품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점검하는 KC인증만 받으면 된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천차만별인 공기청정기의 성능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가전업계가 주로 활용하는 인증 제도로 사단법인인 한국공기청정협회가 인증하는 실내공기청정기 단체표준인증(CA)이 있다. 소형 공기청정기를 기준으로 한국공기청정협회가 청정화 능력(시간당 청정 면적), 오존 발생 농도, 소음도를 측정해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에 CA 인증을 부여한다. 다만 이 인증을 받는 게 의무사항은 아니다. 국내에서 기본적인 성능 검증을 받지 않은 외국산 공기청정기가 버젓이 유통되는 이유다. 중국이 자국에서 판매되는 공기청정기에 CA 인증과 비슷한 공기정화율(CADR) 인증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대부분의 공기청정기 제조사가 CA 인증을 자발적으로 받고 있지만 바이러스 및 세균 제거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등 소비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사항에 대한 실험은 포함되지 않는다. 자사 제품의 성능을 강조하고 싶은 가전업계가 대학 등 주요 연구기관과 협업해 각 바이러스 및 세균 제거율을 측정해 광고하는 이유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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