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순환출자 규제 완화하고
경영정보 공시제도도 보완해야"
전삼현 < 숭실대 교수·법학 >
지난 21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저지했다. 최근에는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 당시 한국 정부가 부당 개입해 7100억원대의 피해를 봤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한다고 한다. 엘리엇이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 길들이기에도 나선 듯하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처방법이다. 28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필요하면 상법·자본시장법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즉 상법이나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들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엘리엇의 공격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상법이나 자본시장법에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도 대기업들은 정관 변경이라는 벽에 막혀 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상법이나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보다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사례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언론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기한에 임박해 현대차그룹이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이라는 다른 제안을 하면서 2개월 만에 현대차와 공정위의 안을 무산시켜버렸다. 2개 대기업이 합병해 지주회사가 돼야만 글로벌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완성차 제조업체(OEM)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즉 금산(金産) 융합을 통해서라도 현대차그룹이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것이 엘리엇의 반대 이유인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원장은 일반지주회사가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과 같은 금융사를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현행법상 금산분리 위반이므로 불가하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러나 엘리엇이 공정위의 판단에 순순히 따를 것 같지는 않다. 삼성물산의 사례처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공정위가 반대해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ISD를 제기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국내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의 주체가 더 이상 우리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외국계 헤지펀드가 돼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개입 정도를 조절하면 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감독의무를 위반한 위법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에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엘리엇과 같은 헤지펀드들의 공격으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상법이나 자본시장법의 개정보다는 오히려 공정거래법 개정에서 찾는 것이 선순위인 듯하다. 구체적으로는 지주회사에 대해 경직화된 현행 규제체제를 완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회사나 손자회사, 증손회사에 대한 경직화된 지분소유 규제와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순환출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 역시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현대차그룹의 경우, 공정위의 순환출자 해소 압박 때문에 불가피하게 지배구조 개편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순환출자 해소가 우리 경제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인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내 대기업들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순환출자가 유일한 경영권 방어수단이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대기업들의 중요한 경영정보와 지분소유 구조를 모두 공개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상의 공시제도 역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 공시가 헤지펀드들에 공격루트를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실현가능한 해법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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