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론 빈곤층 근로소득 0.3% 줄어
‘소득주도성장 긍정 효과 90%’ 근거 논란
(1)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됐다?
상·하위 소득자, 대·중기 임금격차 더 벌어져
(2) 고용의 질도 좋아졌다?
최저임금 올라 임시·일용직 해고 늘어난 탓
(3) 거시지표 보면 경제 좋아지고 있다?
경기지표 10개 중 9개가 하강·둔화 신호
(4) IMF 등도 정부 재정운용 높이 평가?
"노동유연성·생산성 향상 수반해야" 경고
[ 임도원/고경봉/이태훈 기자 ]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이 증가해 근로소득의 불평등이 개선됐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는 90%에 달합니다.”
“여러 거시지표를 보면 경제는 전체적으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소득주도 성장이 실패라거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라는 건 성급한 진단”이라며 제시한 근거들이 논란을 낳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고용 및 분배지표 악화로 시작된 이번 논란에 대해 “소득주도 성장의 긍정적 효과가 큰데 정부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실패론을 불식시키려 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판단 근거를 제시했다. △근로소득 불평등 완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 △고용의 질 개선 △거시경제지표 개선 △국제기구 권고 등을 들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 경제라인에서 통계청의 1분기 가계소득 통계 등을 가공해 논리를 짠 뒤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에 기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과 부합하지 않거나 일방적인 해석에 기반한 결론이라는 지적이 일면서 ‘소득주도 성장 실패’ 논란은 오히려 확산되는 분위기다.
(1) 소득 불평등 개선됐다지만…
문 대통령은 “고용 근로자의 임금이 다 늘었고, 특히 저임금 근로자 쪽의 임금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를 기반으로 “근로소득의 불평등이 개선됐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제공하는 가계소득 통계를 살펴보면 문 대통령의 발언과 다른 수치가 나타난다. 가계소득 통계는 1~5분위와 1~10분위로 나뉘어 게재된다. 1~5분위는 하위 20%(1분위)에서 상위 20%(5분위)까지 20% 간격으로, 1~10분위는 하위 10%(1분위)에서 상위 10%(10분위)까지 10% 간격으로 나눈다.
가계소득은 근로소득+사업·재산소득+이전소득 등으로 나뉘는데 근로소득만 보면 문 대통령 언급대로 1~5분위에서는 올해 1분기 각 분위 근로소득이 모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1~10분위에서는 1분위 근로소득이 지난해 1분기 115만2955원에서 올해 114만9939원으로 0.3%, 4분위에서는 323만5835원에서 316만1190원으로 2.3% 감소했다. 고용 근로자의 임금이 다 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위 분위에서 근로소득 감소가 나타난 것이다. 같은 기간 9분위는 14.6%, 10분위는 17.2% 증가해 대조를 보였다. 그만큼 소득 격차도 커진 셈이다. 소득 분배 지표인 5분위 배율(1분위 소득과 5분위 소득 간 격차)은 5.95배로 2003년 집계 이후 최악의 수준이 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벌어지는 추세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상용직 노동자 5인 이상 사업장의 1인당 월평균 임금 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 늘어난 반면 300인 미만 사업장은 4.9% 상승하는 데 그쳤다.
(2) 임시·일용직 감소로 고용의 질 개선?
문 대통령은 “임시·일용직 근로자가 감소하고 상용직 근로자가 증가하는 등 고용의 질이 개선됐다”고 했다. 올해 1분기 임시직(고용 계약기간 1개월 미만)과 일용직(1개월 이상 1년 미만) 일자리가 전년 동기 대비 18만1000개 감소한 것을 대부분 상용직으로 전환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시·일용직 해고가 늘어난 것을 고용의 질 개선으로 포장했다”고 비판했다. 임시·일용직의 상용직 전환 가능성이 높은 제조업과 도소매업의 임시·일용직 감소세는 1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반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숙박·음식업에서 임시·일용직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전체 임시·일용직 감소 폭은 1년 전보다 5만여 명 확대됐다. 이 가운데 음식·숙박업에 전체 감소분의 40%인 2만여 명이 집중돼 있다. 경직적인 국내 노동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임시·일용직 근로자가 실직할 경우 상용직이 아니라 무직자나 영세 자영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 건설 현장 등에서 상용직이 시간외수당을 많이 받기 위해 임시·일용직 고용을 막는 것도 이들 일자리가 줄어드는 이유로 꼽혔다.
(3) 거시지표를 보면 경기가 상승 중이다?
문 대통령은 “거시 지표를 보면 국내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도 했다. 경기 지표는 워낙 다양하다 보니 어떤 지표를 택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경우 많이 활용되는 것이 통계청의 경기순환시계다. 광공업생산지수 서비스생산지수 소매판매액지수 설비투자지수 건설기성액 수출액 수입액 취업자 수 소비자기대지수, 기업경기실사지수 등 대표적인 경기지표 10개가 각각 둔화→회복→상승→하강의 경기순환 국면 중 어디에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통계청이 분석해 홈페이지에 올려놓는다. 이 경기순환시계를 보면 경기 상승국면에 있는 지표는 소매판매액지수가 유일하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9개 지수 중 4개는 둔화 국면에, 5개는 하강 국면에 있다. 거의 모든 주요 경기 지표가 전 기준 시점 대비 감소세 또는 둔화세에 있고 추세적으로도 후퇴한다는 얘기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평균 증가율과 실업률 등의 지표를 면밀히 따져보면 한국 경제는 2016년 2분기 이후 하강 국면으로 돌아서 불황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4) 국제기구는 소득주도 성장 지지한다?
문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도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운용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기구들이 소득주도 성장을 지지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국제기구들은 소득주도 성장에 우려도 함께 나타내고 있다. IMF는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와의 연례협의에서 “정규직에 대한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며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민간소비 진작이 기대된다”면서도 “생산성 향상이 수반되지 않으면 고용이 둔화하고 경쟁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임도원/고경봉/이태훈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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