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트럼프에 '김정은 친서' 전달
싱가포르 회담 사실상 확정
폼페이오 "앞으로 할 일 많아"
완전한 비핵화 험로 예고
전선 확대하는 트럼프
ICBM도 의제에 포함
"회담 빨리 끝내고 싶지만 두 세 차례 더 열릴 수 있다"
[ 박수진 기자 ] 미국과 북한이 판문점(의제)과 싱가포르(의전) 실무협상에 이어 뉴욕 고위급 회담까지 마치면서 오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개최에 필요한 사전 협의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심복(心腹)으로 불리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한 만큼 싱가포르 정상회담 개최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협상을 빨리 끝내고 싶지만 북한과 비핵화 합의를 하기 위해서는 한 번 넘게 회담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해 완전한 비핵화까지의 과정이 험난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회담 두세 번 더 해야 할지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의 1박2일 고위급 회담이 31일(현지시간) 끝난 뒤 관심은 두 가지에 쏠리고 있다. 앞으로 미·북 정상회담이 어떤 일정으로 진행될지와 어떤 의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지다.
폼페이오 장관은 2시간20분 만에 김영철과의 이틀째 회담을 마쳤다. 하루 전만 해도 합의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으나 첫날 만찬 뒤 미 정부는 곧바로 다음날 기자회견 시간을 못박아 발표했다. 첫날 만찬에서 ‘완전한 비핵화(CVID)-완전한 보장(CVIG)’ 빅딜에 관한 논의가 수월하게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영철이 백악관을 방문하는 1일이면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알게 되느냐’는 질문에 “김영철이 친서 전달을 위해 워싱턴DC를 방문한다”고만 밝혔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정상회담 개최에 변수가 있다기보다는 회담 개최 발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양보한 것”으로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위급 회담이 끝나기 전부터 2차,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없을 수 있다. 두 번, 세 번 회담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언제든 만날 것이라는 뜻과 함께 한 번의 정상 간 만남으로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긴 힘들다는 점을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 역시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다”며 “새로운 미래를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담 개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만들어졌지만 앞으로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미사일 폐기는 어디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미사일 프로그램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했지만 미사일 프로그램을 직접 얘기하지는 않았다.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사일 프로그램 폐기를 언급했다가 북한의 반발을 산 적이 있을 뿐이다.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북핵 협상의 ‘투 톱’으로 불리는 볼턴 보좌관은 지난달 13일 언론 인터뷰에서 “핵무기뿐만 아니라 미사일·대량살상무기(WMD)까지 비핵화해야 보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비핵화에 모든 핵 프로그램의 요소가 포함돼야 한다”며 “그 부분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루기 원했던 모든 이슈를 다 다뤘다”며 “지난 72시간 동안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뤄졌음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미·북이 논의한 미사일 프로그램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지, 한국·일본을 위협하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포함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12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협상 목표는 미국에 대한 핵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핵탄두와 ICBM이 협상 대상이라는 의미다.
◆“한·미 동맹 물 샐 틈 없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북핵 협상 타결 시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이 문제(북핵협상)에 관한 한·미·일 3국의 공조에 대해서는 ‘물 샐 틈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 협상 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기고 이를 중국이 메울 가능성을 묻는 질문엔 “중국이 세계에서 움직이고 있고 그 위험성은 도처에 있다”며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어떠한 위험도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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