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의 '경영과 기술'] 데이터 거래소·브로커 산업을 주목하라

입력 2018-06-04 17:11  

(17) 21세기의 종합상사

이병태 < KAIST 경영대 교수 >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라는 말을 흔히 한다. 데이터에서 추출한 지식으로 부(富)를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전에는 구할 수 없던 데이터를 값싸게 구할 수 있고 그 데이터를 가공해 지식을 창출하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스마트 기술이 가져온 변화 중 하나는 데이터의 양산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사람들의 움직임과 생각이 전에 없이 많이 노출되고 있다. 사람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디를 방문했고 무엇을 먹었는지 디지털 흔적을 남기고 있고, 트위터와 언론 기사의 댓글을 통해 정치적 성향을 표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센서 값이 싸지면서 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데이터까지 스트리밍되고 있다. 최신 스마트폰에는 사용자의 움직임, 빛과 자외선, 자기장, 기압, 온도, 습도, 지문, 홍채, 심장박동 등을 측정할 수 있는 19가지 이상의 센서가 밀집돼 있다. 이런 센서는 사물에 부착돼 계속적으로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바이오기술은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비롯한 생체 정보의 홍수 시대를 열고 있다.

발전하는 데이터 가공, 지식 추출 기술

데이터에서 지식을 추출하는 가공기술 또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사진에서 사물을 식별하는 컴퓨터 비전 기술은 이미 사람 눈의 성능을 추월했고 자연어를 인식하는 수준은 귀의 성능에 근접했다. 이제는 사진에서 감정을 읽어내거나 목소리에서 감정과 성격을 식별하는 기술까지 개발되고 있다. 비정형 데이터에서 지식을 추출하는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데이터산업은 어떤 식으로 발전할까. 데이터라는 원유를 사용자에게 직접 파는 거래시장이 등장하고 있다. 암호화폐 아이오타(IOTA)의 데이터 거래시장을 보자.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생산하는 회사들이 블록체인으로 데이터를 사고파는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기후, 공기의 질, 토지 상태, 도시의 교통 흐름 등의 자료가 IOTA라는 암호화폐를 통해 거래된다. 암호화폐라는 지급 방식에 의해 센서가 만들어내는 극소량의 데이터에도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블록체인으로 안전하게 거래하는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새로운 토큰 경제의 한 예다.

기업과 정부가 수집하는 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규제로 쉽게 거래하거나 활용할 수 없다. 그러나 원유만 갖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원유를 정제해야 청정하고 효율 높은 에너지가 나오고, 다른 성분과 혼합해 석유화학제품을 만드는 것처럼 다양한 원천의 데이터를 결합할 때만이 데이터의 가치가 커진다. 이런 개인정보의 거래는 최근 유럽의 강력한 개인정보법인 GDPR과 같은 법으로 규제받고 있다. 개인정보 비식별 데이터의 거래를 허용하더라도 공공부문의 데이터 거래는 원활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많은 양의 데이터를 규제에 저촉되지 않도록 비식별화하는 것에는 충분한 법률적 지식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는 이런 데이터 비식별화를 할 수 있는 지식과 자원이 없다. 둘째, 거래에 참여할 유인책이 없다. 데이터를 가공해서 부를 축적하는 곳은 민간부문이지만 국가기밀 유출이나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면 공공부문은 그 비난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데이터 공여 행위에 대한 긍정적인 동인이 적고 부정적인 결과의 책임만 존재하는 한 공공부문이 정보 제공에 적극 참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 하나의 문제는 데이터에서 지식을 추출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가공하고 지식을 추출하려면 통계와 인공지능, 데이터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그런 전문가가 일반 기업과 공공부문에 많지 않다.

경제개발 초기 종합상사 역할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데이터 거래소와 데이터 브로커 산업이다. 원본 데이터를 규제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가공하고 지식을 추출하는 전문인력이 밀집된 새로운 조직과 기업이 필요해진 것이다. 미국, 일본, 중국에서는 이런 조직을 정부가 권장해 우후죽순처럼 출현하고 있다.

한국 경제 개발 초기에는 해외시장을 개척할 외국어에 능하고 무역거래 전문지식을 갖춘 인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무역을 전담하는 종합상사에 무역 인력을 집중해 경제개발에 성공한 것과 같은 이치다. 데이터 거래소와 브로커 기업들은 데이터의 거래와 지식 추출, 데이터 생성과 파괴에 이르는 과정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술적, 법률적 지식이 응집된 새로운 에이전트 기업이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의 미래를 확신하고 데이터가 ‘21세기의 석유’라는 말을 믿는다면 경영자들은 데이터 거래소와 브로커 산업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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