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경제정책으로서의 복지

입력 2018-06-04 17:46   수정 2018-06-05 09:06

김용익 <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yikim5908@hanmail.net >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언론은 이런 여론조사를 한다. ‘새 정부가 할 일로 가장 중요한 것은? 1. 성장 2. 분배 3. 남북대화….’ 답은 언제나 1번이 가장 많았다. ‘먹고사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익숙한 질문이고 익숙한 결론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경제와 복지는 다른 영역이고 두 가지는 서로 대립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성장을 중시하면 분배는 악화되고, 분배를 중시하면 성장이 저해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성장과 분배 중에서 택일하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견해다.

논란이 많던 기초연금이 오는 9월부터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인상된다. 이것이 ‘경제와는 상관이 없는’ 복지정책일 뿐일까? 노인들은 당연히 이 돈으로 이런저런 상품을 사들이고 대부분 골목에서 쓴다. 그러니 노인 1인당 5만원어치의 ‘골목상권 진흥기금’이 추가로 투입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럼 단순한 ‘경기부양책’일 뿐 ‘성장’과는 무관한가? 기초연금은 1회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매달 지속적으로 지급하는 돈이다. 구매능력의 구조적인 확대는 생산 구조의 일정한 성장으로 구조화될 것이다.

병원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집안 어르신이 입원하면 간병인을 쓰느라 집집마다 큰 부담을 지게 된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는 병원이 간호와 간병을 모두 책임져주는 제도다. 대규모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고 이른 시일 안에 대부분 병동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러자면 훨씬 더 많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보조인력을 써야 한다. 이것이 ‘경제와는 상관이 없는’ 보건정책일 뿐일까? 고용이 늘어나고 근로소득이 확대되고 구매력이 증진된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소비하고 생산 구조를 확대할 것이다.

서구 복지국가들이 복지를 인권과 분배 문제로만 봤다고 생각하면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복지정책은 내수 확보, 고용 확대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경제정책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또한 시장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시장소득 분포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경제정책은 복지정책의 필수적인 일부분이기도 했다.

경제와 복지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는 것은 피상적인 관념일 뿐이다. 물론 때로는 충돌하지만 그게 경제-복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경제정책 간에도 심각하게 충돌하는 일은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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