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블루오션 시프트] 파괴적 혁신 vs 非파괴적 창조

입력 2018-06-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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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익숙한 것과의 결별》

20여 년 전 외환위기 와중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책은 제목부터가 익숙하지 않았다. 평생직장일 줄 알고 살아온 평범한 직장인들이 명예퇴직,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떨고 있을 때, 바로 그런 믿음과 헤어져야 한다고 주문한 구본형의 외침은 울림이 컸다. ‘얼굴 없는 회사원’으로 살았던 많은 직장인들이 큰 파도를 겪었다.

평범한 회사원들이 결기를 다진 데 비해 기업 세계에선 변화가 적었다. 돈을 버는 조직에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야말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모양이다. 투자할 돈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익 창출이 불투명한 신규 사업보다는 매년 일정한 매출을 올려온 기존 사업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새 사업 배치를 ‘유배간다’고 여기는 풍토에선 좋은 인력도 구하기 어렵다. 부서의 영향력이 매출과 비례하다 보니 부서장들은 절대 기득권을 놓지 않는다.

익숙한 기존 사업이 성장 걸림돌

모든 정보를 알고 경쟁사 동향도 꿰뚫고 있을 것 같은 기업 세계에서 하루아침에 기존 업체들이 쓰러지는 일이 생겨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가진 업체가 나타나면 기존의 질서가 단번에 파괴되기도 하는 것이다. 휴대폰이 나타나자 ‘삐삐(페이저)’는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됐고, 디지털 카메라 앞에 아날로그 필름은 자취를 감췄다. 익숙한 것이 한 번에 파괴되는 것은 기업 세계에서 더 흔한 일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우월적인 기술이 출현해 기존 기술을 무너뜨리는 것을 ‘창조적 파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처음에는 열등한 기술이어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가 놀라운 가격경쟁력으로 어느 순간 기존 사업을 쓸어버리는 것을 ‘파괴적 혁신’이라고 부른다. 파괴당한 업종은 간판조차 남지 않는다.

이런 파괴와 혁신이 21세기 들어서는 더욱 일상화되고 또 글로벌화되고 있다. 국내에서, 특정 업역에서는 어느 정도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구조조정 대신에 미리 회사를 나가 자영업 사장이라도 할 수 있었던 직장인들에 비해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는 사실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현장에서 리더들을 만나면 “기술이 없다”는 하소연 일색이다. 블루오션의 외침이 강한 곳이 바로 여기다.

기술없이도 가치혁신 신념가져야

창조적 파괴나 파괴적 혁신이 모두 ‘기술’을 강조하는 데 비해 블루오션에서는 고객들도 잘 몰랐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 ‘비파괴적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치혁신은 새로운 기술이 있든 없든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식용유를 거의 쓰지 않는 감자튀김 ‘액티프라이’, 중장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 비아그라,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신용대출을 해 주는 서비스인 마이크로파이낸스 등은 기술이 아니라 구매자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증진시켜 혁신에 성공한 비파괴적 창조의 결과물이다.

혁신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라면 이제는 파괴적 혁신보다는 비파괴적 창조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게 됐다. 결과를 중시하는 세계의 포퓰리스트들이 모든 혁신을 ‘파괴적’으로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책 시장을 재편하고 유통까지 ‘주무르는’ 아마존을 두고 ‘파괴적 혁신’이라고 규정하고 그 힘을 규제로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미 나오고 있다.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익숙한 것과도 결별하고, ‘비파괴적’ 창조까지 신경 써야 하는 과제가 목전에 있지만 한국 대기업들이 그런 신경을 쓸 틈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래저래 성장 잠재력을 발휘할 방법이 없는 시절이다.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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