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붕괴 당시 핵폐기 모델
블룸버그 "트럼프 보고받아"
핵기술 제3국 유출 방지 위해
과학자들 전직·재취업 지원도
北 '리비아 모델'에 거부감
美 의회 동의가 최대 변수
[ 주용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2일 열리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른바 ‘카자흐스탄식 비핵화 모델’을 보고받았다고 블룸버그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모델은 1991년 옛 소련 붕괴 당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에 남아 있던 핵무기를 폐기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샘 넌 전 상원의원과 리처드 루가 전 상원의원이 주도해 ‘넌-루가 프로그램’으로도 불린다.
블룸버그통신은 두 의원이 전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시 입법 활동과 교훈을 보고했으며 그 자리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배석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북핵 해법으로 카자흐스탄 모델이 적용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목받는 카자흐 핵폐기 모델
카자흐스탄 모델의 핵심은 핵무기의 외부 반출이다. 카자흐스탄은 1992~1995년 핵무기 1000여 기와 전략 폭격기 등을 러시아로 내보냈다. 이 모델은 핵 전문가의 전직과 재취업도 포함하고 있다. 핵 기술이 제3국이나 테러단체로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서방국가들은 핵을 포기한 카자흐스탄 등에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도 ‘넌-루가 프로그램’에 따라 직접 지원에 동참했다. 미국이 지원한 금액은 4년간 16억달러가량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모델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러시아를 제외한 옛 소비에트연방 국가가 모두 비핵화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537기와 ICBM 격납고 459개, 폭격기 128대, 공대지 핵미사일 708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496기, 핵잠수함 27척, 핵실험 터널 194곳이 폐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옛 소련의 핵 전문가를 통한 핵기술 유출도 거의 없었다.
◆미 의회 동의와 북한 진의가 변수
카자흐스탄 모델이 거론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백악관을 방문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났을 때 북핵 해법과 관련해 “리비아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방식 등 여러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선(先)핵폐기-후(後)보상 방식으로 미국 강경파가 선호하는 ‘리비아 모델’에 북한이 극도로 거부감을 보이는 점도 카자흐스탄 모델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리비아는 2004년 미국에 핵무기와 핵문서를 넘긴 뒤 2006년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2011년 내전이 발생했고 카다피 대통령은 반군에 의해 처형됐다.
미국도 카자흐스탄 모델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넌 전 의원과 루가 전 의원은 지난 4월23일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미국과 동맹국이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 초를 되돌아봄으로써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강조했다. 2008년 2월에는 루가 전 의원의 보좌관과 저명한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북한을 방문해 이 모델의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문제는 미 의회가 카자흐스탄 모델에 선뜻 동의해줄 거냐다. 이 모델은 미국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4년 북한과 제네바 합의 때도 북한 핵시설 폐기에 드는 비용을 한국 등 주변국에 거의 떠넘겼다.
북한이 진짜 핵을 폐기할 의지가 있느냐도 걸림돌이다. 카자흐스탄 등 옛 소비에트연방국은 소련 해체로 원치 않게 핵보유국이 됐다. 때문에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대가로 한 비핵화에 적극 협력했다. 반면 북한은 내부적으론 ‘고난의 행군’, 외부적으론 미국은 물론 혈맹인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십 년간 핵을 개발했고 헌법에도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북한이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보유국이 되려고 한다’고 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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