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4년 왕의 명령으로 만들어
연속식 증류기 나와 대량생산
전쟁·美 금주령으로 한때 불황
위스키 절반이 스카치 위스키
매출 상위 10위중 과반수 차지
1994년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가 있었다. 세계 200여 개국에 수출되며 고급 술의 대명사로 떠오른 스카치 위스키의 번영을 자축하는 행사였다. 스카치 위스키도 처음부터 부드럽고 향기로운 술로 제조된 것은 아니었다. 다섯 세기에 걸쳐 수많은 풍파를 거치며 때로는 업계의 노력으로, 때로는 행운에 의해 개량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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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를 두지 못해 친척이었던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을 겸하면서 양국은 곧 대영제국으로 통합됐다. 하지만 대영제국은 스카치 위스키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 100여 년간 이어진 스카치 위스키는 수난시대를 맞았다. 이에 반발한 양조업자들은 산간에 숨어들어 밤에만 증류하는 소위 밀주업자(moonshiner)가 됐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위스키를 오크통에 담아 동굴 등지에 숨겨 둔 것이 후일 위스키 품질을 대변하는 숙성 기술의 토대가 됐다. 1824년 위스키에 관한 세금이 완화돼 밀주업자들이 양지로 나오게 됐고 스카치 위스키는 대영제국의 성장과 함께 부흥했다.
스카치 위스키 수요가 증가하면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기술들이 개발됐다. 특히 1831년 아일랜드의 세무원인 아네스 코페이가 특허를 받은 연속식 증류기는 그레인 위스키의 대량생산을 이끌었다. 한편 도시의 위스키 상인들은 증류소마다 특색이 다른 위스키를 보다 대중에게 호감이 가는 맛과 향으로 블렌딩해 품질을 향상시켰다. 이때 개발된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가 현재도 전체 스코틀랜드 위스키 생산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스카치 위스키업계가 위기를 맞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카치 위스키의 큰 시장이었던 미국의 금주법(1920~1933년)에 따른 불황이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독일에 의해 유럽 대륙으로부터 고립됐다. 이에 스코틀랜드의 많은 증류소가 문을 닫았고 위스키는 숙성고에서 잠들게 됐다. 다행히도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부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 전쟁으로 장기간 판매하지 못한 위스키였다. 장기화된 불황에 오랜 기간 숙성된 위스키가 고급 위스키로 대접받았다.
숙성 연도를 라벨에 표기한 제품이 처음 나온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스카치 위스키업계는 이를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했다. 더 나아가 이를 보호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2009년 연산과 관련된 라벨, 포장, 광고에 대한 규정을 만들기에 이른다. 다만 이런 조치는 2016년 기준 스카치 위스키 제품 중 83%가 연산을 표기하지 않는 제품일 정도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세계 위스키 소비 트렌드 흐름에 반대돼 오히려 스스로의 발목을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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