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자살행위란 비판에 '은행업 폐지' 국민투표 부결

입력 2018-06-11 18:21   수정 2018-06-11 22:26

대출을 핵심 업무로 하는 민간 은행업을 사실상 금지하고 중앙은행에만 신용창출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스위스의 주권통화(sovereign money) 도입 국민투표가 결국 부결됐다. 스위스 급진 개혁파는 민간 은행의 과다한 신용창출이 금융위기를 부른다며 이 같은 입법을 추진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스위스에서 10일(현지시간) 치러진 주권통화 입법화를 위한 연방헌법 개정 찬·반 국민투표가 75% 반대로 부결됐다. 독일어로는 폴겔트(vollgeld·완전지급준비제)로도 불리는 주권통화제도는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보유예금에 대해 100% 지급준비 상태를 유지토록 강제하는 게 골자다. 은행들은 예금의 일부분만 인출 요구에 대비해 중앙은행에 예치하거나 직접 보유하고 나머지는 대출에 활용해 왔으나 이것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은 정부가 이 같은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해 부동산·주식 거품이 형성되고 주기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를 막기 위해 주권통화제도를 도입해 예금 기반의 신용창출은 정부 소유 중앙은행이 독점하고 시중은행은 뮤추얼펀드나 투자금, 자기자본으로만 대출하게끔 한다는 개념이다. 중앙은행이 모든 예금과 대출을 관리하는 것은 예전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정보기술(IT) 발달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금융위기를 방지하고, 시중은행이 중앙은행과의 거래를 독점해서 얻는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위스 정부와 금융업계는 강하게 반대했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스위스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면 금융시장 및 경제기반이 일거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의 세르지오 에르모티 최고경영자(CEO)는 “유권자들이 해당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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