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탄광 통해 본 우리사회 민낯

입력 2018-06-12 16:35  

리뷰 - 연극 '후산부, 동구씨'


[ 김희경 기자 ]
소극장 무대 자체가 하나의 사회와 시대가 됐다. 뛰어난 무대 구성과 배치로 극 속 사회와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권력자들의 모습을 한번에 그려냈다.

지난 8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막을 올린 연극 ‘후산부, 동구씨’ 얘기다. 황이선 연출의 작품으로 배우 김대진, 오민석, 안영주, 윤광희, 박영기, 문병주, 이인석 등이 출연한다.

극은 1982년 실제 일어난 태백 탄광 붕괴 사건을 재구성했다. 희락이란 작은 마을에서 4명의 광부가 무너진 탄광에 갇힌다. 20일간 간절하게 구조를 기다리는데, 처음엔 노래도 부르고 서로를 격려하지만 점차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탄광 밖 사회 권력자들의 모습도 함께 그린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무대 구성이 독특하다. 중앙에는 무너진 탄광 안 광부들을 배치했다. 무대 맨 뒤 위쪽엔 구조 책임을 진 공무원 등이 얼굴만 빼꼼히 내민다.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광부들의 모습과 서로 쓸데없는 말만 쏟아내며 책임 소재를 따지기만 하는 공무원의 모습이 한 무대에 중첩되는 방식이다.

무대 왼쪽에선 극 초반부터 줄곧 4명의 악사가 장구, 꽹과리, 북 등을 두들겼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효과음을 내기도 해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역할도 했다. 악사들은 또 올림픽 뉴스, 탄광 붕괴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를 내며 당시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함께 표현해낸다.

극한의 상황을 해학 넘치는 대사와 율동으로 이끌어 간 점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객석에선 연신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이 서툴고 미흡한 막내 광부란 뜻의 ‘후산부’ 동구를 포함해 4명의 광부는 힘든 노동에도 재밌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무너진 탄광 안에서도 따뜻한 인간미가 돋보였다. 결국 처절하게 방치되며 매우 혼란스러워하는데 이런 두 모습이 극적으로 대비됐다.

다만 동구의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한없이 맑고 순진하던 동구는 선배 광부의 죽음 때문에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 감정의 변화가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에 해당하는 만큼 좀 더 정교하게 그려졌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오는 22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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