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일 해결 못하면 보수당 아냐… 힘 있는 與가 낫다"
한국당 반성없이 '엉터리 정치'
文정부 정책 견제 힘 못써
경제상황 개선책도 안 내놔
[ 박동휘/김태현/오경묵 기자 ]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 못하는 당은 보수당이 아니제.” 오종수 한일냉장 회장은 ‘6·13 지방선거’를 며칠 앞두고 ‘신기한 경험’을 했다. 부산 기업인 모임에서 대놓고 “더불어민주당을 찍는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오 회장은 “갈수록 지역 경제가 휘청거리는데 자유한국당이 반성은커녕 엉터리 정치를 일삼아 이번엔 확실히 바꾸자는 뜻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샤이 보수’들의 반란은 결국 부산 정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꿨다. 지방선거 사상 단 한 번도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던 민주당이 16개 선거구 중 13곳을 휩쓸었다.
강남 부자들도 “한국당 못 믿어”
이번 지방선거는 1995년 첫 번째 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마(魔)의 60%를 넘어섰다. 사전투표율도 최고였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에 무관심한 부동층이 30~40%라는 점을 감안하면 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겠다는 유권자가 늘었다는 의미”라며 “소위 말하는 샤이 보수들의 참여율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서울 강남구에서 기초단체장 선거활동을 지원한 한국당 소속 보좌관 A씨는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에 사는 분들을 만나면 경제 양극화 문제를 얘기하더라”고 했다. “갈수록 청년세대의 삶이 고달파지니 기업과 부자에 대한 인식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국당보다는 민주당이 나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머리를 큰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삼성 논현동 등 강남의 부촌 구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몰표를 준 현상의 배경이다.
보수층의 민심은 생각보다 차갑게 식어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밝힌, 서울 홍은동에서 만난 정춘호 씨(66)는 “한국당은 서민의 마음을 모른다”며 “법이나 질서를 얘기하는데 서민들한테만 엄격하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관대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당원조차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스스로를 ‘강성 보수’라고 말한 연세대 대학원생 A씨(29)는 “문재인 정부의 비합리적인 정책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야당은 문제가 크다”며 “한국당은 시대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국정농단 세력과의 단절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천지개벽 영남 정치
유일한 ‘한국당 은거지’로 잔존한 TK(대구·경북)도 언제까지 ‘보수 텃밭’으로 머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게 대구의 민심이다. 권모씨(46·주부)는 “대구에서 한국당 후보를 시장으로 뽑았다고 밖에서 비판하는데 요즘 대구 민심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대구 유권자들은 김부겸(현 행정안전부 장관)도 뽑아 준 곳이라 인물만 좋으면 표를 준다”고 말했다.
대구시 기초의회 의원만 해도 민주당은 44개 선거구 가운데 43곳에 46명을 공천해 45명을 당선시켰다. 대구시 수성구에선 민주당 구의원이 10명(비례 1명 포함)으로 한국당(9명)보다 많은 이변이 연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달성군 4개 선거구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 4명(도일용, 김보경, 이대곤, 김정태)도 모두 득표율 1위로 당선됐다.
기존 보수 정당을 향한 부산의 ‘이반’은 훨씬 심각하다. 보수가치를 지지한다고 밝힌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김태민 씨(58·사업)는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기업인들의 경제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다”며 “그런데도 막말과 당내 공천갈등 등 구태를 반복하는 한국당 행태가 꼴보기 싫어져 처음으로 진보(민주당)를 찍었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한다는 해운대구의 한 유권자는 “부산에서 단체장은 진보와 보수 성향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아 한번 바꿔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한국당을 찍은 주위 기업인들조차 정치에 혐오를 느끼면서 나라 꼴이 어찌 될지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동휘/부산=김태현/대구=오경묵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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