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혁신의 모태, 융합연구 저변 넓혀야

입력 2018-06-17 18:15  

융합은 과학·사회 문제 해결의 열쇠
아직도 높은 분야 간 장벽 허물어
소통·협력의 선순환 체계 갖춰야

이진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



올 1월 개장한 계산대 없는 매장 ‘아마존고’는 ‘저스트 워크 아웃’ 방식으로 운영된다. 매장에 들어갈 때 앱(응용프로그램)을 실행하기만 하면 물건을 고르고 나서 계산할 필요 없이 그냥 나오면 된다. 기존 쇼핑 문화와 오프라인 유통시장에는 큰 충격이다. 이처럼 아마존은 인공지능 비서, 클라우드 서비스와 같이 여러 첨단 과학기술을 융합해 시대를 이끄는 혁신을 연달아 창출하고 있다.

미국의 문명사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는 《총·균·쇠》를 통해 발전한 문명과 그렇지 않은 문명의 차이는 생물학적 원인보다는 지리적 요인과 다른 문화를 포용하는 ‘사회 환경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문화에 다른 문화를 포용해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든 국가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춰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잠재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대륙과 잘 융합돼 있는 섬’ 같다고 언급한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을 갖추고 있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약소국을 돕는 나라로 도약한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잠재력을 기반으로 21세기의 총·균·쇠라고 할 수 있는 ‘융합’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고 잘 활용해 새로운 혁신을 창출해 낸다면 또 다른 도약을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다.

융합은 단순히 특정 분야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학문과 지식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연구의 방법, 철학, 지향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융합이 잘되려면 우선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진단 및 분야 간 장벽을 넘나드는 상호 소통과 협력을 통해 다양한 연구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현장 연구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부분(91%)이 연구개발 성공과 지속 혁신을 위해 융합연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 탐색(37%)을 그 핵심 동인으로 인식했다. 반대로 다른 분야 연구자와의 교류 경험 부족(25%)은 융합연구를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인식의 전환일 것이다. 지난달 열린 ‘청년과학기술인과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에서 연구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과 분야를 엮어서 해답을 내놔도 사람들이 연구를 통해 개발한 기술이 무엇인지를 묻곤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학제 간 연구가 확대되는 등 융합연구의 저변이 넓어졌다. 하지만 융합연구 자체를 ‘하나의 분야’로 바라본 나머지 여전히 분야 간 장벽이 높게 쌓여 있고 연구개발 전반의 융합을 촉진하는 기제가 미흡한 상태다. 이런 답보 상태를 해소하고 융합을 통한 도전과 혁신의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1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철학을 ‘제3차 융합연구개발 활성화 기본계획’에 담았다.

이번 계획에서는 융합연구를 가로막는 제도적·문화적 장애를 극복하고, 연구 목적에 기반한 소통과 협업의 장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융합 시도와 노력을 장려할 계획이다. 또 과학의 난제부터 융합 신산업 창출, 국민생활 문제 해결까지 융합연구가 폭넓게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융합 모델을 제시하고, 선도 프로젝트를 통해 융합의 효과와 결실을 체감할 수 있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융합은 하나의 특정 기술이나 분야가 아니라 과학적·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다. 제3차 융합연구개발 활성화 기본계획을 통해 융합이 연구개발 전반에서 일상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연구자 스스로 융합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도전과 혁신의 문화가 연구개발 전반에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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