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인 건강검진이 활발해지고 진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뒤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는 환자들이 많다. 몸 속에 암이 있는지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다면 암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설립된 바이오제멕스는 임신 진단키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매년 5억원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작은 회사지만 큰 무기를 가지고 있다. 피 한 방울로 암 발병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김수웅 대표(사진)는 지난 13일 경기 성남에 있는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암 진단키트 '튜모스크린'의 원리를 차분히 설명했다. 상용화한다면 암 예방 및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달리 무한히 증식한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에 다르면 암세포는 세포의 성장, 증식, 분화에 관여하는 인산화 효소 'PKA'를 정상세포보다 많이 생성한다. 그래서 세포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 PKA가 세포 바깥으로 방출되는데 이것을 'ECPKA'라고 한다. 김 대표는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ECPKA를 5~10배 더 방출한다"며 "세포 밖으로 나온 ECPKA는 혈액으로 유입된다"고 말했다.
인체는 ECPKA를 항원으로 인식하고 이를 공격하기 위해 항체를 만들어낸다. 암조직이 클수록 다량의 ECPKA가 나오기 때문에 항체도 더 많이 형성된다. 튜모스크린은 이 항체의 농도를 측정함으로써 암 발병 여부를 파악한다. 그는 "기존 암 진단키트는 항원을 검출하는 방식이지만 튜모스크린은 혈액 속 자가항체를 검출하는 최초의 암 진단키트"라고 했다.
항원보다 자가항체를 검출하는 것이 정확도가 높다는 게 김 대표 설명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 결과 ECPKA를 바이오마커로 하는 암 진단의 경우 항원보다 항체를 검출하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이오제멕스는 ECPKA 항체에 대한 전용실시권(특허권자가 타인이 특허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함으로써 생기는 권리)을 NIH로부터 2005년 획득했다. 김 대표는 "NIH가 이 연구에 투입한 비용은 4700만달러에 달한다"며 "우리가 그동안 쏟아부은 개발비도 150억원"이라고 했다.
5~10μL(마이크로리터)의 혈액에서 분리한 혈청을 튜모스크린에 떨어뜨리고 리더기에 넣으면 20분 안에 암 발병 여부가 나타난다. 혈청 속의 ECPKA 항체가 키트에 있는 인조 ECPKA와 결합하면 형광물질로 표시되는 방식이다. 주목할 점은 항체의 농도를 측정함으로써 암의 병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조기 진단부터 암 환자 관리까지 가능한 셈이다. 그는 "정상인의 항체 농도를 기준선으로 설정하고 그 선을 얼마나 넘었는지 측정하는 방식으로 병의 심각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제품의 정확도는 90% 수준이다. 김 대표는 "안정적인 정확도를 확보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동안 혈액에 있는 항체와 항원을 분리하지 않고 임상시험을 진행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지난해 항체와 항원을 분리해 임상시험에 적용한 뒤 정확도가 대폭 개선되면서 제품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튜모스크린은 2005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이미 의료기기 제조·판매 허가를 받았다. 양산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어 출시가 10년 넘게 늦어졌지만 내년까지는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올 하반기 미국의 한 업체로부터 시제품을 인도 받은 뒤 미국과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신의료기술 인증을 받는다는 것이 바이오제멕스가 세운 시간표다. 제품은 국내 시장에 먼저 내놓고 추후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판매 허가를 받을 예정이다. 가격은 20만원 내외로 잡고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세계 체외진단 시장 규모는 2015년 59억달러(약 7조원)에서 2022년 127억달러(약 15조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암 검진을 받는 인원은 국내에서만 매년 약 800만명에 달한다. 그는 "3년 안에 전 세계에서 7000~8000만개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튜모스크린이 본격 출시되면 연간 매출액이 2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바이오제멕스는 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는 진단키트 출시가 완료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암인지 판별할 수 있는 신제품 개발에도 나선다. 또 늦어도 2년 안에 기술특례 상장을 하는 것이 목표다. 한미약품, 일양약품 등 제약업계에서 40여 년 동안 몸을 담아 온 김 대표는 "바이오제멕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바이오 업체로 발돋움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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