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성·전문성 보장하고
장관은 관리에서 손을 떼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도
정치가 개입하는 환경에선
연금사회주의로 직결될 뿐
최광 < 前 보건복지부 장관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밀수, 관세 포탈, 재산 해외 도피, 탈세 등과 관련한 보도가 계속 이어져 국민의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며 “대한항공의 2대 주주로서 사용할 수 있는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현안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되나 특정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 언급은 위법 소지가 있는 발언이다.
복지부 장관을 지낸 필자가 후임 장관 발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장관의 부적절한 처신을 미연에 방지해 향후 어느 장관도 법정에 서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차제에 독립성과 전문성이 담보되는 새로운 기금운용 지배체제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국민연금법상 기금운용 책임자는 복지부 장관이다. 그래서 장관이 기금운용의 가장 상위 기관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러면서 복지부 장관은 기금운용을 국민연금공단에 위임하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위임된 기금운용을 국민연금기금운용규정에 의거해 관리한다. 개별 투자 결정은 기금운용본부장 책임 아래 독립적으로 이뤄진다. 복지부 장관과 공단 이사장 어느 누구도 개별 투자 건에 대해 관여할 수 없으며 사후적으로만 보고받도록 규정돼 있다.
전직 복지부 장관 한 분이 기금운용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혐의는 장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상부 지시에 따라 개별 건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부의 지시 여부보다 규정상 못하게 돼 있는 개별 건에 장관이 개입했는지 여부로, 최종 결과는 대법원 최종심에서 판명될 것이다.
다른 전임 복지부 장관은 2016년 말 방영된 한 종편 TV 프로그램에서 “내가 복지부에 있을 때 1000억원 이상 투자 결정은 보고가 다 들어왔다. 정밀하게 보고받고 결정해 줬다”고 말했다. 장관이 개별 투자 건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을 무용담으로 자랑하며 자신의 행위는 돌아보지 않고 현재 재판받고 있는 후임 장관을 비난했다. 내용만을 놓고 볼 땐 위법성이 더 강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문제 삼는 관련 전문가나 언론이 없다.
복지부가 국민연금제도의 주무관청으로서 기금운용을 최종 책임지는 것은 맞다. 문제는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에 기금운용에 개입할 수 있다고 자타가 막연히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나 기금운용위원회는 기본적 투자 방향, 전략적 자산 배분, 중장기 계획 등을 심의 의결하는 조직이다. 개별 투자 건이나 특정 의결권 행사는 기금운용위원회 심의 사항이 아니며 더더욱 장관이 이에 개입할 수 없다.
복지부 장관의 범법 가능성을 줄이고 기금운용을 효율적으로 하는 최선의 방법은 기금운용 지배구조를 독립성과 전문성이 담보되도록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복지부 장관은 기금운용에 대해 감독만 하고 관리에서는 손을 떼게 해야 한다. 전문성이 없는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힘들게 사회를 보는 모습은 그 자체가 안쓰럽다. 독립성은 정부(복지부)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고 전문성은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구성을 포함해 모든 기금운용 조직과 과정에서 필요한 전문성을 가진 자들만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복지부 장관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검토할 수는 있다. 문제는 도입된 나라 모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전에 민간 기관투자가는 물론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기관투자가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완벽히 보장돼 있었는 데 반해 우리는 그렇지 못한 데 있다. 기금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히 복지부 장관이 개별 기업에 대해 정의감을 앞세운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을 수 있는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연금사회주의로 직결된다.
밀수, 재산 해외 도피, 탈세, 기업주의 갑질 등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이기에 당연히 적정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각종 일탈 사안별로 해당 기관이 있다. 각 기관이 관련법을 적용해 처리하면 된다.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를 빌미로 복지부 장관이나 기금운용 관련 특정 위원회가 특정 기업의 각종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만저만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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