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신영 기자 ] “가산금리 구성 내역을 공개하라는 것은 제품의 원가 내역을 밝히라는 것과 같습니다. 동의하기 힘든 요구입니다.”
19일 만난 한 은행 임원은 대뜸 불만부터 터뜨렸다. 금융감독원이 가산금리 내역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문제라는 얘기였다. 가산금리는 대출 금리를 정할 때 기준금리에 덧붙이는 금리다. 원리금을 못 받을 위험, 인건비, 은행의 목표 수익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된다.
금감원은 지난 2~3월 은행의 금리체계를 점검한 결과 가산금리가 체계적·합리적으로 산정되지 않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은행들이 돈을 빌려간 사람의 신용도를 필요 이상으로 안 좋게 평가하거나, 마진율을 높여 잡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금감원은 해결책으로 가산금리 내역을 자세하게 공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외국 어느 은행도 은행의 가산금리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 미국의 웰스파고은행과 씨티은행 모두 마찬가지다.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소개하면서 기준금리에 고객의 신용등급, 유동성 리스크, 홍수·지진 등을 대비한 보험료 등으로 금리가 구성된다고 설명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이유는 가격결정권은 은행에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서다. 은행은 경영 전략에 따라 판매를 줄이고 싶은 상품에 대해선 금리를 올리고, 영업을 확대하고 싶은 부문에서는 금리를 내린다. 은행 스스로 경영 판단에 따라 부문별로 가격을 달리 책정하고 거기에서 수익성 차이가 생긴다.
한국 은행들이 금감원의 가산금리 공시 강화 정책을 반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가산금리 내역을 상세히 공시하면 정부 간섭이 불 보듯 뻔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목표 수익을 왜 이리 높게 잡았느냐. 인건비는 너무 많이 책정한 것 아니냐’는 등의 압박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은행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으로 적발되지 않을지도 걱정하고 있다. 금감원은 가산금리 체계를 의논하기 위해 은행들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경쟁 업체들이 모여 가격을 논하는 것 자체를 담합 시도로 본다. 금감원 뜻대로 했지만 나중에 공정위가 문제 삼으면 금감원이 책임질지도 궁금하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