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팔방미인' 공정거래위원회

입력 2018-06-20 17:43  

오형규 논설위원


정부 부처의 ‘끗발’을 가늠할 때 수습사무관들의 근무 희망 부처를 본다. 2016년 행정고시(재경직) 출신 수습사무관 성적 상위 10명 중 4명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지망해 관심을 모았다. 공정위가 정책·예산을 쥔 기획재정부나 서울 근무가 이점인 금융위원회(각 2명)를 압도한 것이다.

몇 해 사이 공정위가 확 뜬 것은 막강한 권한에다 퇴직 후 로펌과 대기업 등에 재취업하기 쉽다는 점이 부각된 것으로 관가에선 보고 있다. ‘시장경제 지킴이’를 자처하지만, 외부 시각은 7대 권력기관의 하나이자 ‘경제검찰’, ‘재계 저승사자’다.

그도 그럴 것이 공정위는 거의 전 산업을 대상으로 독점·담합조사는 물론 출자구조, 내부거래, 하도급 거래, 소비자 분쟁 등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조사권, 과징금, 고발 등 다양한 ‘칼’도 지니고 있다. 공정위의 문어발식 영역 확대는 ‘힘 빠진’ 산업통상자원부와 자주 대비된다. “산업부 장관이 부르면 안 가도 공정위원장이 소집하면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간다”는 게 재계 불문율일 정도다.

공정위는 1981년 경제기획원(현 기재부) 산하 ‘공정거래실’로 출범할 때만 해도 정원 75명짜리의 작은 조직이었다. 1980년대 후반 상호출자제한 등의 규제제도가 도입되고 1988년 정유사 담합에 최초로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급부상했다. 1990년 기획원에서 독립했고, 1996년 장관급 기구로 격상했다.

2000년대 들어선 과징금 단위가 수백억원, 수천억원으로 커졌다. 2010년부터는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 강력한 규제기관으로 부상해 정원도 600명이 넘는다.

정권마다 공정위를 ‘잘 드는 칼’로 삼다 보니 무리수가 많았다. 대표적인 게 이명박(MB) 정부 시절 ‘물가관리위원회’로 추락했던 흑역사다. “물가에 신경쓰라”는 MB의 특명을 받은 김동수 당시 공정위원장은 간부 전원을 모아놓고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사표를 쓰라”고 윽박질렀다.

최근에는 여론이 들끓는 사안마다 약방의 감초가 됐고, 경제민주화도 총괄한다. 그럴수록 공정위 전관(前官)들의 몸값이 올라간다. 어제 검찰이 공정위를 압수수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위상과 기능이 커진 만큼 공정위가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 FTC처럼 독점·담합을 억제하는 경쟁당국이기보다 민간의 사적 영역까지 개입하는 규제기관화하고 있어서다. ‘경제민주화’ 바람에 편승해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를 보호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 공정위가 이제는 ‘혁신성장’까지 맡겠다고 나섰다. 실세(實勢)로 평가받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그제 강연에서 혁신성장 생태계를 만드는 데 공정위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열 일 하는 ‘팔방미인 공정위’라고 할 만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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