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 시계 보도 배후는 원세훈 국정원…'언론 흘리기' 제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의 배후에 국가정보원이 있고 검찰은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재차 반박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이 전 부장은 25일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원 전 원장이) 임채진 검찰총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노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가 거절을 당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고급시계를 받았다는 의혹은 이로부터 일주일쯤 뒤인 2009년 4월 22일 KBS에 보도됐다고 이 전 부장은 밝혔다.
이 전 부장은 보도가 나갈 당시 원 전 원장의 고교후배인 김영호 전 행정안전부 차관 등과 저녁 식사 중이었고, 보도를 접한 뒤 원 전 원장을 강하게 비난했다고 주장했다.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내용의 2009년 5월 13일 SBS 보도 역시 국정원의 소행으로 의심한다고 이 전 부장은 언급했다.
이 전 부장의 주장에서 거론된 방송사는 "해당 주장은 명예훼손"이라며 민·형사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SBS는 "'원세훈 원장과 SBS와의 개인적 인연' 등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통해 SBS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한 데 대해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논두렁 시계' 보도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법적인 다툼으로 비화하고 강제수단을 동원한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1년 출간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언록이자 자서전인 ‘문재인의 운명’(가교출판)에 언급된 이인규 전 중수부장에 대한 언급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검찰 수사 당시 상황에 대해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검찰 조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이 아무 증거가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과 박연차 회장의 말이 다른데 박 회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통화기록조차 없었다.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고 썼다.
이어 "뇌물로 받은 1억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갖다 버렸다는 ‘논두렁 시계’ 소설이 단적인 예이다. 사법처리가 여의치 않으니까 언론을 통한 망신주기 압박으로 굴복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언론은 기꺼이 그 공범이 됐다.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기사는 보수언론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그렇게 날카로운 흉기처럼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글을 쓴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 반성한 것을 보지 못했고, 글쓰기를 자제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고 검찰과 언론의 행태를 지적했다.
문재인 출범 이후 적폐청산 수사가 시작되자 이 전 중수부장은 다니던 로펌을 그만두고 9월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