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어느 공공기관의 '할말 많은' 적자

입력 2018-06-27 09:34   수정 2018-06-2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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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이란 곳이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유통되는 제품의 품질과 안정성에 대해 시험하고 인증하는 공공기관입니다. 정부 연구소 부설기관이었다가 2006년 독립했죠.

그런데 이 기관의 운명이 기구합니다.

이 회사는 원래 서울 구로구 디지털단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5년 뜬금없이 경남 진주로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골자로 한 국가균형발전법이 생겼기 때문이죠.

진주혁신도시로 이사하는 데 350억원의 예산이 들었습니다. 지상 6층짜리 건물을 신축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회사는 애초 지방으로 옮기는 게 맞지 않았습니다. 연간 3만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시험인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대상기업 대부분이 수도권에 있기 때문이죠. 사실 진주엔 이 회사의 ‘고객’이 거의 없습니다.

직원들은 일주일의 절반은 진주에, 나머지는 불가피하게 고객을 찾아 서울에 머무는 식으로 근무해 왔습니다. 사택 비용 뿐만 아니라 직원 출장비가 급증할 수밖에 없었죠. 2015년부터 두 해 연속으로 큰 폭의 적자를 냈던 배경입니다.

산업기술시험원은 경비 절감 등 치열한 자구노력 끝에 작년에서야 간신히 1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국정 과제로 하달됐습니다. 이 회사 정규직은 무기계약직을 포함해 750명 가량인데, 위촉계약직 파견계약직 등 비정규직도 300명가량 됩니다. 정부에선 이들을 빨리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독촉하고 있지요.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연간 50억~60억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란 게 회사측 추산입니다.

산업기술시험원은 연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모두 마무리한다는 계획입니다. 따라서 올해와 내년 역시 적지 않은 규모의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지요.

일반 공기업이라면 손실이 나도 별로 걱정할 게 없습니다. 정 안되면 혈세로 메워주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이 회사는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정부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는 구조입니다. 정부 위탁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 민간 기업과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적자가 발생하면 직원들은 괴롭습니다. 자체 경비를 추가로 줄여야 하고 성과급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복지 측면에서도 손해를 볼 수 있구요. 산업기술시험원 관계자는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경영개선 노력과 함께 정부 정책을 차질없이 이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정책 변화에 따라 춤을 춰야 하는 공공기관. 치솟은 몸값의 이면에 나름대로의 그늘이 있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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