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란 뭔가 일순간에 확 바뀌는 게 아니에요.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고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을 때 새로운 개념과 기술의 도입을 통해 한층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산업의 기초가 부족한데 4차 산업혁명을 하겠다는 건 허상입니다.”
지난 20~22일 경기 오산 롯데인재개발원에서 △금형설계 △로봇 △사출성형 △소성가공 △열처리 △자동화 △절삭가공기계 △표면처리 등 ‘2018 기술인재양성교육’ 8개 과정을 진행한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서석숭 전무(사진)는 뿌리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생산 공장에서 깎고 찍어내고 가열하는 기술을 다루는 것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이 핵심기술로 거론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지지 않느냐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정공법’을 설파한 셈이다.
서 전무는 “국내 중소기업의 현실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장 정리·정돈부터 동선 확보, 불량률 개선 등 비효율과 낭비를 줄이는 것조차 아직 완벽하지 않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우산’을 씌워봤자 제대로 작동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개념이 처음 등장한 독일도 제조업 강국이란 점에서 그의 지적은 설득력 있다. 서 전무는 “대기업 출신 지도위원들이 중소기업 현장에 가보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할 정도라고들 한다. 이 같은 현실을 알수록 더욱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확신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한일재단이 10년 전부터 일본 우수 퇴직기술자 유치 활용사업을 진행해온 이유다. 국내 기업 현장지도로 시작한 이 사업은 2012년 기술인재양성교육도 실시하면서 교육 및 사후관리가 연동되는 유기적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재단이 이를 주관하는 것은 출범 배경과 취지를 들여다보면 쉽게 납득된다. 한국은 일본에서 부품·소재를 수입, 완성·조립해 수출하는 산업구조 탓에 1992년에는 대일 무역적자가 79억달러까지 늘었다. 당시 전체 교역량의 5%에 이르는 수치였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해 한일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양국간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구체적 행동계획의 결과물로 한일재단이 설립됐다.
서 전무는 “부품·소재 및 기초기술 분야 양국 격차를 줄여나가는 게 재단의 태생적 역할”이라며 “연수생과 강사를 모으고(gathering) 맺어주며(matching) 훈련시키는(training) 기술인재양성교육도 그 일환이다. 민간 부문에서 양국 신뢰를 쌓는 작업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기업이 자금·설비·인원을 투입하면 수익은 늘어나죠. 하지만 중소기업은 그게 쉽지 않아요.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요. 결국 기술이 중요합니다. 기술력 향상으로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게 중소기업의 돌파구가 될 수밖에 없어요. 국내에서 방법이 잘 안 보인다면 일본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한일재단이 소수정예 매칭 교육을 시작한 것이죠.”
현지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꾸준히 사업을 이어오며 확보한 일본 우수 퇴직기술자 750여명 데이터베이스(DB)는 고스란히 재단의 자산이 됐다. 국내 중소기업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한일재단을 통해 30년 이상 경력 일본 장인들의 기술지도를 받은 횟수만 500건이 넘었다.
참여 기업들의 불량률 개선 효과는 31.8%에 달한다. 생산 시간(리드 타임)도 평균 15시간 단축됐다. 연간 매출 7571억원 상승, 비용 390억원 절감. 수출 5720억원 증대 등의 가시적 성과가 뒤따랐다.
하지만 서 전무는 “이 같은 수치를 100% 재단의 교육 및 사업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적을 과대 포장하기보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의 중요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틈날 때마다 참여 기업들에게 혈세가 투입된 교육임을 역설하곤 한다. 서 전무는 “예컨대 미국에선 국민보다 ‘납세자(taxpayer)’라는 호칭을 즐겨 쓴다”면서 “그만큼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달라는 취지다. 피상이 아닌 심층, 겉멋이 아닌 진실로 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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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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