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남북교류의 숨은 영웅

입력 2018-06-27 17:22   수정 2018-07-0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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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선 <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yshee@kbiz.or.kr >


“2013년 개성공단 가동이 6개월 중단됐다가 재개됐을 때 다시 만난 북한 근로자와 나눴던 뜨거운 포옹과 눈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들과 곧 재회할 꿈을 매일 꾸고 있어요.” “손재주가 좋았던 한 북한 근로자를 잊을 수 없습니다. 기술을 알려줬더니 그걸 활용해서 제 생일에 선물을 만들어 주더라고요.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아마 꽤 잘나가는 상품을 생산해 북한 장마당에서 부자가 됐을 겁니다.”

지난주 남북경협포럼에서 만난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이야기다. 고용인과 근로자의 관계를 넘어 함께한 시간이 쌓아준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런 긍정적 경험들이 바탕이 돼 최근 남북한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매주 경제단체 등이 경쟁적으로 여는 포럼에서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기대할 수 있는 합의가 도출된 결과다.

개성공단은 매력적인 경제적 협력 공간을 넘어 남북 간 마음의 벽까지 허물어주는 인적 교류의 장이다. 많은 사람이 남북경협 하면 남포공단을 조성한 대우그룹이나 개성공단·금강산관광에 참여한 현대아산을 떠올리지만, 사실 이들 사업에 참여한 기업의 90% 이상은 중소기업이었다. 남북경협의 최일선 현장에서 중소기업은 ‘정서적인 통일’까지 이뤄냈던 것이다.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담긴 USB를 전달했다. 서해안과 동해안, DMZ의 3대 경제축을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앞으로는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되는 기존의 경협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이 공동 번영할 수 있는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협력 방안이라도 경제적 성과뿐만 아니라 끈끈한 정서적 교류까지 이뤄내려면 남북경협 시작부터 함께해온 26년 경력의 베테랑인 중소기업의 참여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월드컵 열기가 한창인 요즘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박지성은 선수 시절 ‘소리 없이 강한 영웅’을 의미하는 ‘언성히어로(unsung hero)’로 불렸다.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그에 대한 팬들의 찬사였다. 그동안 남북 교류에 참여한 중소기업 또한 숨은 영웅이었다. 그 기여를 인정받고, 그들이 활약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남북 교류의 언성히어로가 어벤저스로 멋지게 변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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