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는 개별 기업에 맡기고
장기성장 '근력' 키우도록 도와야
김원식 < 건국대 교수·경제학 >
국민연금기금의 실질적 운영 책임을 지고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한항공에 공문을 보냈다. 기금운영위원회 명의로 12.4%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주로서, 관련 자료와 경영진 면담을 요청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앞으로 기금운용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논란이 돼온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관련한 최적의 사례가 대한항공이 된 것이다.
절차나 법률적 문제를 떠나 한 기업 경영권자의 가족이 일으킨 사태로 인해 정부가 공개적으로 경고를 하는 것은 기업과 그 기업의 직원들에 대한 망신 주기와 다르지 않다. 갑과 을의 관계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는 을에게 갑질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또 고용관계를 다루는 고용노동부 장관도 아니고 국민연금기금의 최고 책임자가 이런 조치를 하는 것은 정부가 사실상 투자대상 기업들을 정부기업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용은 국민연금기금이 투자하고 있는 전체 민간 기업을 정부의 입맛에 맞게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용에 대해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하는 제도라고 하지만 이들 국가는 사실상 임의규정으로 두고 있을 뿐 아니라 환경도 다르다. 캐나다 연금을 운영하는 캐나다연금위원회(CPPIB)는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어서 간섭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연금기금을 운영하는 일본정부연금투자기금(GPIP)은 비록 스튜어드십 코드를 운영한다고 하나 일본은 정부와 기업이 국익을 위해 항상 소통을 하는 나라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반(反)기업 정서가 강하고, 특히 현 정부 인사들은 거의 재벌개혁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이들이다. 1년 동안 공석 중인 기금운용본부장도 아직 뽑지 못한 채 가장 핵심이 될 기금운용의 기본 수칙을 기금운영위원회에서 통과시킨다는 것도 모양새가 안 좋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지배구조도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이 국민연금공단 내 기금운용본부에서 기금을 관리하도록 할 것인지, 외부에 기금운용공단을 별도로 설치할 것인지에 대한 결론을 우선 맺어야 한다. 정부 예산보다 큰 600조원에다가 앞으로 2500조원까지 불어날 국민의 자금을 운용할 지배구조에 대한 결정 없이 관리원칙만 결정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지배구조부터 결정해야 하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결정은 이들의 책임하에 두는 것이 옳다.
그리고 국민연금기금은 일정 규모로 분할해 정치적으로 독립 운영하면서 서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30년대가 되면 기금은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대 후반에는 완전히 고갈된다. 앞으로 10여 년 후가 되면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때 분할된 기금을 수익률 성적에 따라 해산시키면 된다.
분할된 연금기금의 운영자들은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당연히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용을 고민할 것이다. 일부 기금은 적용할 것이고 일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생존을 위한 개별 연금기금의 몫이다. 이것이 수익률 극대화를 위한 국민연금기금의 최적 모델이다.
국민연금기금은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을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둘 일이 아니다. 우리 기업과 자본시장이 자생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적응할 근력을 키우게끔 도움을 주는 것이 낫다. 1970년대 개발연대의 폐쇄적 경제를 가정한 경직적 스튜어드십 코드의 지배구조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는 전 세계 시장에서 무한 경쟁을 하는 기업들 스스로가 창의적으로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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